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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05. 2023

김해공항 2

시절인연

내가 상경할 무렵까지 우리 회사 내에서 부산공항 지점은 꽤 큰 부서였다. 입사해서 여기로 배치되었을 때 지점 인원이 100 명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국내선, 국제선, 화물, 총괄, 관리, 운항, 정비 파트로 나뉘었다.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회사는 KTX 운행과 영남 노선의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자회사인 LCC(저비용 항공사)를 설립하고 국내선과 부산발 일부 국제선 운영권을 넘겼다. 부산공항 지점 운영 노선이 줄어듬에 따라 관련 직원들의 대거 인사이동이 불가피해졌다. 50 명 가량의 직원들이 고향을 떠나 인천, 김포공항 등지로 배속되었다.


한 차례의 인사이동 파동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회사는 비용 절감을 사유로 탑승 수속, 출발 게이트 등 비교적 단순 공항 업무는 협력사를 설립하여 조업을 맡겼다. 이제 발권 및 조업직원 관리업무를 수행하는 최소한의 인원만 필요했다. 2차 인사이동의 먹구름이 몰려왔다. 직원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객지로 가는 명단에 본인 이름을 올려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 간의 신경전이 일어났고 반목이 더해졌다. 지점장과 친한 직원들이 함께 명단을 작성한다더라, 누가 남고 누가 간다더라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급기야 나중에는 두 패로 갈라져 같이 밥도 안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김해공항에서 근무하는 11명의 직원들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생존자들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직원들과 상견례를 가졌다. 막내 여직원을 제외하고는 과거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었다. 당시 20대 초중반의 풋풋했던 여직원들은 어느덧 불혹을 넘긴 중년이었다. 그들과 나는 짧지 않은 20 년동안 서로를 모르고 살았다. 머리가 희끗한 선배 남직원도 한 명 있었는데 멋쩍은 인사를 서로 나눴다. 직원들은 옛 동료가 지점장으로 부임한 것을 다행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의심의 촉수 또한 세우는 듯했다. 최근 십 수년간 전임 지점장들은 전부 외지 사람들이었다.


당시 코로나 상황이 끝나가는 무렵이었는데 김해공항 국제선 터미널에 상주한 타 항공사들은 재운항 준비로 매우 분주했다. 반면 우리 회사는 베트남 국적의 외항사 조업만 하고 있었다. 지난 2년간 대부분의 국제선이 비운항하는 관계로 많은 직원들이 비자발적으로 무급 휴직을 했는데, 조업 재개를 계기로 몇 달 전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 조업 대상 항공사가 하루 4편 운항하는데, 첫 편은 이른 아침 출발이라서 사전 준비를 위해 직원들은 새벽 일찍 출근했다.


2 년 여만에 직장으로 돌아와 다들 몸은 피곤했지만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표정들이 진지했다. 공항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젊은 시절 한때 이곳에서 일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선배들에게 혼나면서 일 배우고 뛰어다녔던 이곳으로 지점장이 되어 돌아오다니 인생 참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 국제선 청사는 예전 지질한 모습과 달리 국제공항의 면모를 갖췄다. 우리 자회사인 LCC 도 지역 기반을 토대로 그동안 많이 성장한 모습이었다. 처음 자회사를 설립할 당시 직원 교육을 우리가 했었는데, 이제 자회사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려면 눈치를 살펴야 할 형편이었다.


늦가을로 접어들 무렵, 매년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회사 문화체육행사로 직원들과 함께 금정산성에 올랐다. 법륜 스님의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예쁘다'는 말씀을 실감하듯 금정산은 다채로운 색깔로 등산객을 맞아주었다. 여직원들은 단풍놀이에 빠져 좋아하면서 내년 꽃피는 봄에도 놀러 오자며 깔깔 웃었다. 미리 예약해 둔 산 중턱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오랜만에 마시는 금정산성 막걸리는 달달해서 다들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20대의 수줍음 많았던 여직원들은 이제 술 맛을 아는 아줌마들이 되어 있었다. 직원들은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옛날 추억 얘기를 시작으로 급기야 동료들을 떠나보낸 장본인으로 자회사를 덜먹였다. 취기가 오른 직원 한명이 결국 자기들 자리도 자회사가 다 뺏어갈거라며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그림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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