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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06. 2023

김해공항 3

시절인연

하루하루 쌀쌀해져 가더니 초겨울로 진입했다. 누군가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바닷바람으로 마냥 따뜻한 체감 온도는 아니었다.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공항으로 출근했다. 미남로터리를 지나 만덕터널로 진입하자 차가 막혔다. 어릴 적부터 해운대에서 김해 방향으로 가려면 만덕터널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때도 차가 막혔었다. 부산은 고질적인 구간에 차만 안 막히면 산과 바다를 늘 볼 수 있는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 사무실에 도착해 컴퓨터를 켜자 본사 공항 인사담당으로부터 사내 메신저가 들어와 있었다.


'지점장님, 긴급 전화 요망 드립니다.'


회사에서 '긴급 전화'를 요하는 것은 경험상 대체로 안 좋은 일이었다. 찝찝한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역시 내 예감이 맞았다. 현재 부산공항 지점은 외항사 조업만 하는데 현 인원 11명은 너무 많다는 얘기였다. 임원 지시로 2명을 인천공항으로 발령낼 예정이니 선발하라는 것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보니 우리 부산뿐만 아니라 대구, 광주, 여수 등 내륙에 있는 지점은 전부 인원을 축소할 계획이었다.


'11 명 중, 2 명을 어떻게 선발한단 말인가'


의논할 사람도 없었다. 나 혼자 결정해야 한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선발해야 직원들이 납득을 할 것인가. 눈치 빠른 직원들이 당장 알아채지 못하도록 가면도 써야 했다. 11 명의 직원들과 면담을 실시했다. 혹시 지원자가 있을까 물었지만 차라리 안 물어보는 것이 나을 뻔했다. 남직원 2 명은 각각 모셔야 할 병든 노모와 본인 암 진단으로 치료를 받고 있어 제외했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자녀를 둔 여직원들을 제외했다. 자녀가 너무 어려서 서울 가면 봐줄 사람이 없는 여직원들도 제외했다.


소거법이 완료되자  마침내 2명이 았다. 이 두 여직원을 면담하고 내 마음속으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논리적이지 않은 이유를 들어 설명하고 설득했다. 그리고 양해를 부탁했다. 돌아오는 질문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지점장님! 왜 우리가 가야 하죠?'


그다음 주에 2명이 인천공항으로 발령 났다. 남은 9 명은 떠나는 2 명에게 슬픈 표정으로 위로했지만 속으론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발령은 몇 달 후에 발생할 전조에 불과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떠나보낸 직원들의 빈자리는 작지 않았다. 남은 직원들은 떠난 직원들의 몫까지 채워야 했다. 그리고 고용 안정을 위해서 외항사 조업 이외 부산발 우리 노선을 재운항할 필요가 있었다. 본사 영업 전략팀에 재운항 검토를 적극 요청했다. 본사도 지점의 요청에 부응해 상세한 국제선 재운항 검토 자료를 경영층에 보고 드리고 결단을 기다렸다. 재운항이 결정된다면 추가 인력이 필요해져 몇 해 전에 고향을 떠난 부산지점 출신 직원들도 불러올 수 있었다.


경영층은 신중했다. 과거 부산발 국제선의 손익이 부진했고 무엇보다 합병 이슈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외항사 조업을 중단하고 자회사로 넘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외항사 조업을 중단한다면 이제 국제선 복항 여부는 지점 운명을 가를 마지막 승부수가 되었다.


그림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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