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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07. 2023

김해공항 4

시절인연

영업 전략을 수립하는 본사 여객 본부의 입장은 초지일관 지점과 동일했다. 문제는 최고 경영층의 의지였다. 수정 보완된 재운항 검토 자료가 수차례 보고되었다. 이 와중에 외항사 조업 중단 지시와 부산발 재운항에 신중했던 대표가 돌연 사임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다. 하와이와 부산공항 지점장 인선시 나를 발탁했던 대표가 사임한 소식에 개인적인 안타까움은 있었지만 부산 지점 존속을 위해서라면 차기 대표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신임 대표께 최종 검토 보고서가 올라갔고 드디어 재가를 얻어냈다. 외항사 조업 중단 이후 다시 무급 휴직을 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자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획득한 양 다들 기뻐했다. 국제선 복항과 외항사 조업은 차원이 다른 업무다. 2 년 이상 직장을 떠난 직원들과 국제선 복항 준비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각오를 다졌다.


'불모지 하와이 지점 개설보단 낫겠지'


국제선 재운항 일자가 정해졌다. 인력 보충 계획을 본사와 협의했다. 승무원 레이오버 호텔, 케이터링 등 제반 시설도 점검했다. 국제선 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발권, 운항, 위험물 처리자격 등 본사의 재교육 실시도 필요했다. 산업혁명 시대의 증기기관차 바퀴가 힘차게 돌아가듯 모든 게 순조롭게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모든 준비 활동은 보류되었다. 투입할 소형 기재가 없다는 것이 표면적이 이유였다.


'있던 기재가 갑자기 어디로 갔단 말인가'


중국이 문을 열 움직임을 보이자 그동안 지점을 옹호했던 여객 본부는 당초 계획을 수정했다. 부산발 보다 수익성이 좋은 인천발 중국행으로 돌연 전략을 바꿨다. 중국과 일본 노선은 단거리 노선으로 분류되어 대부분 소형기재가 투입된다. 여객 본부장께 전화를 드려 선처를 부탁했지만 당장 우선순위에서 밀렸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김해공항 앞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떠올랐다. 부산공항 지점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 것이었다.


여객 본부에서 부산발 국제선을 보류했다는 소식은 인사팀으로 그다음 날 바로 들어갔다. 구조조정에 혈안이 되어있는 상황에 우리 지점은 훌륭한 먹잇감이 되어 주었다. 국제선을 재개하여 부산공항 지점을 비상시키려는 계획은 이제 영영 물거품이 되었다. 인사팀의 지시가 내려왔다. 직원 전원을 인천과 김포공항으로 발령낼 계획이고 전략경영팀과 협의하여 지점 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처럼 무작정 본사의 지시를 기다려야 했다. 본사가 지점 폐쇄를 결정한다면 나는 남아 사무실 정리 작업을 해야 했다. 해외에서 지점 개설하느라 조직의 쓴 맛을 봤는데 이제는 내 고향 지점 정리 작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인생 참 모르겠다.


그림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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