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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08. 2023

김해공항 5

시절인연

계획이 몇 번 번복되었지만 결국 지점 폐쇄로 결정이 났다. 추운 겨울날, 11 명 전원 인천과 김포 공항으로 발령이 났다. 지점 정리 작업을 위해 발령 난 부서 출근을 조금 연기한 회계 담당 여직원과 나만 남았다. 직원들은 허탈한 표정이었다. 얼마 전까지 국제선 재운항을 준비한다고 분주했는데 하루아침에 객지로 발령이 났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발령이 난 다음날부터 한두 명씩 서울과 인천에 살 집을 알아보러 갔다. 어느 겨울,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나서 부산을 떠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공항 근처 식당에 떠나는 직원들과 마지막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우리는 애써 태연한 척 밥을 먹었다. 인천과 김포 공항, 두 지점으로 나뉜 직원들은 각각 직장 근처 계약한 오피스텔과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얘기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먼저 떠나보낸 선후배들 얘기도 했다. 결국 순서가 문제였지 모든 직원들이 고향, 부산을 떠나게 되었다.


주말에 기장 대변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20 년 만에 돌아온 큰아들이 다시 객지로 떠나게 된 소식에 어머니는 어리둥절해하셨지만 곧 담담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오랜만에 큰아들하고 함께 다녀서 이 엄마는 행복했다. 고맙다, 아들아'


어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본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선친과 생전에 참 많이 다투셨는데 요즘에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자주 말씀하시며 저 세상에서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오전 처갓댁을 방문해서 말씀드렸더니, 장모님은 이왕이면 밤바다가 예쁜 여수지점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낭만을 즐기는 늘 소녀 같은 분이시다.


남은 회계 담당 여직원과 함께 지점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업무 관계로 계약된 모든 거래처에게 지점 폐쇄를 알리고 계약을 해지했다. 지점 정리 업무가 개설만큼은 아니었지만 30 년 이상 존속해 온 지점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각종 인허가 서류와 사무실 집기도 모두 처분했다.  


날씨가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지하철 아래의 온천천도 얼음이 녹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들어도, 한참을 들어도 물 흐르는 소리는 참 좋다. 물속에 노니는 한두 마리 물살이를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모래터에 앉아 깃털을 말리는 청둥오리가 정겹고 바위 위에 꼼짝 않고 서 있는 두루미도 반갑다. 봄이 오고 있었다.


3월, 지점 정리 작업 중에 청주공항 지점장으로 발령이 났다.


'청주'


낯설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사실 충청도는 내게 제일 낯선 지역이었다. 전국에 우리 회사 지점이 있어 본사 근무할 때 출장을 가끔 갔었다. 제주, 부산, 광주, 대구, 인천, 울산, 수원, 대전, 여수, 목포, 포항, 춘천, 강릉, 진주를 다 가봤지만 청주는 처음이었다.


어머니께 전화드려 청주로 가게 되었다고 말씀드리자 조금 놀라셨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외조부 얘기를 하셨다. 어머니가 태어나고 몇 달 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외조부의 고향이 충북 옥천이셨다.


'나도 충청도와 인연이 있었구나'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데,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고, 무진장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는


'시절인연'


벚꽃이 막 필 무렵 나는 외조부의 고향, 충청도로 떠났다.



그림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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