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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09. 2023

캔자스 1

해외 생활

어느 겨울,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미국 캔자스시티행 비행기를 탔다. 군대 제대 후 2학년으로 복학해서 학교를 다녔지만 역시 내 적성에 경제학은 맞지 않았다. 취직을 위해 상과대에 진학했었다. 미국행 결정은 토익의 열풍이 막 시작될 무렵이라서 영어라도 제대로 배우자는 생각이었다. 캔자스 시티와 애틀랜타에는 우리 집안을 제외하고 아버지의 여섯 형제자매분들이 모두 살고 계셨다. 아버지는 둘째이자 장남이셨는데 누님이신 큰 고모가 사시는 댁으로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큰 고모의 남편은 미군 예비역이었는데 몇 해 전에 돌아가셔서 고모님 혼자 살고 계셨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 편은 복잡했다. 부산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김포로 갔다. 김포에서 노스웨스트 비행기로 갈아타고 나리타 공항에서 내려 시애틀까지 간 뒤 미니아폴리스를 거쳐 캔자스시티로 가는 여정이었다. 싼 항공편을 구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었다. 덕분에 잠시지만 여정 한 번에 여러 도시를 찍었다.


미국이란 나라는 학생 비자를 받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은행에 일정액의 잔고가 있어야 했고 다닐 학교의 퍼미션도 있어야 했다. 심지어 한국에서 2년 동안 다녔던 과목별 성적표도 보내야 했다. 창피했다.


아버지도 오랫동안 형제자매 분들을 못 보셔서 같이 가셨다. 나리타에서 내려 시애틀로 가는 터미널을 찾아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일본어로 공항 안내원에게 길을 물으셨다. 아버지가 일본어로 대화하시는 것을 그때 처음 보았다. 아버지 고향은 일본 고오베였는데 해방이 되고 초등학교 때 한국으로 건너오셨다고 들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사용하셨던 생존 일어를 구사하신 것이었다.


나리타에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관문인 시애틀까지 오는 여정은 무척 길었다. 미국적 비행기라서 승무원들도 미국인처럼 보였고 기내식도 양식이었다. 고소공포증이 심해서 심신이 매우 불안했는데 옆에 앉은 백인 할머니는 모니터로 영화를 보며 깔깔되고 있었다. 시애틀에서 내려 같은 미국땅인 미니아폴리스로 오는 시간도 꽤 걸렸다. 미국이 큰 나라이긴 한가보다 생각했다. 비행기가 최종 목적지인 캔자스시티에 착륙 준비를 할 즈음 하늘에서 내려다본 캔자스시티의 풍경은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미국 영화에서 봤던 화려한 뉴욕이나 시카고와는 전혀 딴 판인 시골이었다. 순간 미국이 아닌 러시아 어느 시골에 비행기가 잘못 내리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이것이 난생처음 미국 땅, 캔자스시티에 발을 디딘 나의  첫 느낌이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삼촌 차를 타고 아버지 형제자매 분들이 기다리고 계신 둘째 고모댁으로 향했다. 둘째 고모댁은 아파트라고 하는데 단층이었다. 단층으로 길게 늘어선 아파트는 그때 처음 봤다. 미국은 처음인 조카를 놀리느라 고모들은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했다.


"조카야, 미국은 모기도 다리가 엄청 기닿다. 한국모기보다 훨씬 다리가 길어"



그림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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