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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11. 2023

캔자스 3

해외 생활

남은 건 실기 시험이었다. 금발의 백인 여자 경찰이 동승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컬러풀한 눈동자의 백인 여자를 마주 보면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혹자는 화이트 콤플렉스라고도 한다. 어쨌든 경찰이다. 미국 경찰, 서툰 짓하면 권총도 쉽게 빼드는 인간들이다. 경찰은 간단한 단어로 짧게 지시했다.


"롸잇 턴", "랩 턴", "킵 고잉", "풀 오벌", "스탑!"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즉시 혼날 것 같았다. 주행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주행 시험도 사전에 친척들로부터 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백미러만 보지 말고 틈틈이 고개를 돌려 뒤를 봐야 한다' 던가, 뭐 그런 단순한 것이었지만 당락을 결정짓는 주효한 팁이었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듣고 합격했다. 나중에 미국 운전면허증을 받았을 때는 학업 우수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한국에선 장롱 운전면허증이었다. 미국 드라이브 라이선스를 가지고 처음 학교로 운전해 가는데 겨울이었는데도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학교 이름은 UMKC(University of Missory in Kansas City)였다. 캔자스시티는 독특하게 캔자스 주와 미조리 주로 나뉘는데, 사는 집은 캔자스 주였고 학교는 미조리 주에 있었다. 아무튼 캔자스시티로 불렸다. 주가 다르므로 주 법도 당연히 달랐다.


학교에 도착해서 더듬거리는 영어로 물어물어 교실로 찾아갔다. 살다 보니 미국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교실 안을 슬쩍 둘러보니 '사담 후세인' 같이 생긴 애가 있었고 히잡을 쓴 눈이 크고 얼굴색이 까무잡잡한 여자 애도 보였다. 이들은 쿠웨이트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곧 한 명씩 속속 도착했다. 한국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왠지 머리와 눈썹 스타일이 조금 다르고 낯선 분위기의 애들은 대만과 일본인이었다. 첫날은 각자 자기소개 시간이었는데 세상에 있는 엉터리 영어는 다 모아놓은 거 같았다. 한 학기 동안 읽고 쓰고 말하고 듣기 수업을 한다고 선생님이 말하는 것 같았는데 각자 커리큘럼 종이를 받은 뒤 첫날 수업이 끝이 났다.


빨래방 아르바이트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숙제를 한 뒤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매일 5시간이었다. 사실 별로 하는 일은 없었다.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주고, 세탁기 투입구에 동전이 걸렸을 때 빼내 주는 일이 주 업무였다. 좀 지루한 일이 될 수도 있었지만 빨래하러 오는 사람 구경은 아주 재미있었다.


미국에서 살아보니까 미국인들은 내가 영어를 알아듣든 말든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쉴 새 없이 쏱아낸다는 것을 알았다. 영어 구사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책은 그저 상대방 눈을 응시하고 살며시 웃는 것이었다. 그럼 그럴수록 상대방은 나를 친절하고 선한 사람으로 단정 짓고 더욱 많은 말을 해대는 것이었다. 빨래방 아르바이트를 한 달 정도 했을 때 제법 많은 손님들이 나에게 먼저 다가와 한참을 떠들다가 가곤 했다.



그림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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