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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Sep 26. 2023

MBTI

인프피

며칠 전에 난생처음으로 MBTI라는 것을 해봤다. 유행에 민감한 스타일이 아니라서 한창 인기가 있는 대중가요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한참 후 시들해질 때 즈음 그 노래가 좋아지는 경우가 자주 있다. 철 지난 MBTI를 이제야 한 것도 그런 성향을 반영한 것일 거다. 좀 웃기는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고라니와 새들은 어디서 비를 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전에 혈액형이나 별자리별 성격, 심심풀이 사주를 보면 맞는 것도 있고 좀 아닌 것도 있었는데, MBTI는 신기할 정도로 내 성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줘서 많이 놀랐다. 결과는 INFP였다. 남자는 좀 드문 성향이란다. 백명의 한 명 꼴 정도. 생각 많고, 감성적이고, 공감 잘하고, 상상력 풍부하고, 걱정 많고, 상처 잘 받고, 혼자 있을 때 편안하고, 공상에 빠져 살고.


'어쩐지 군대나 회사 같은 조직 생활이 많이 힘들더라니깐'


우리 지점의 직원들 성향도 궁금해서 눈에 띄는 대로 물어봤다. 실습생 2명을 포함해서 남자 3, 여자 14, 모두 17 명인데 각양각색이었다. 자기 MBTI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한 명, 한 번도 안 해본 사람도 한 명 있었다. 나와 똑같은 인프피는 2 명이었고 둘 다 여직원이었다.


나와 같은 인프피 여직원들과 얘기를 나눠봤는데 정말 서로 비슷했다. 내향적이고, 공감을 잘하고, 걱정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생을 믿는 도 공통점이었는데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니까,


'부잣집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어요'

'돌멩이로 태어나고 싶어요. 바닷속에 던져져서 구경하고 싶어요'


ST 성향을 가진 직원들은 세 명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들려주는 얘기가 재밌다.

'친한 친구가 긴 머리를 갑자기 싹둑 잘랐다고 전화가 오면', NF 성향은 무슨 일 있냐고 걱정하며 물어본다고 들었는데, 자긴 이렇게 물었단다.


'머리 잘랐다고? 얼마나 잘랐어?'


나와 다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취직 후 조직생활 좀 잘해 보려고 외향적인 모습으로 살아왔다.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을 때는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쿨 한 척하려고 티를 안 냈다. 회식 자리에서는 의도적으로 우스개 소리를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조직장이 된 이후로는 대범한 리더의 모습을 흉내 내며 부하 직원들의 사기를 독려했다. 이렇게 고단한 시간을 버텨냈다.


잊고 살았던 나의 천성에 살며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작년 지방 발령이 나고 혼자 지내고부터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지나온 삶을 반추하게 되고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인생의 전환점을 돈 시점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이라도 내 성향에 관심을 갖고 참나 찾은 것에 흐뭇하다.


무엇보다 인프피의 여러 특징 중에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지금 내 마음은 지극히 평온한 상태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실행에 옮길 것이다. 한 가지 더! 아내는 INFJ, 영혼의 동반자.


사진 by 해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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