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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Oct 01. 2023

바다

그리움

추석 명절을 쇠러 아내와 함께 고향 부산으로 내려갔다. 추석 전전날이 어머니 생신이라서 매년 연휴가 시작되는 전날 하루 연가를 냈다. 이번에는 부임지인 청주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서울에서 출발할 때보다 훨씬 수월한 편이었다. 운전을 좋아하고 잘하는 아내 덕분에 나는 조수석에 앉아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기장 대변항에 사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저녁 약속 장소인 해운대 달맞이길로 갔다. 2012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줄 곧 혼자 지내고 계신다. 오랜만에 보는 여동생 내외와 함께 고즈넉한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러 달맞이길을 조금 걸었는데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늘 붐볐던 곳이었는데 조금 의아했다. 아마도 소위 핫플인 센텀시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추석 전날에 어머니는 며느리와 함께 전을 부치고 튀김을 하셨는데 더 이상 하지 않으신다. 추석 차례상을 주문한 지가 몇 년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극구 반대하시던 어머니도 연세가 들어가시면서 만족해하시는 눈치다. 제사상 준비하시느라 고단한 노동 대신에 아들, 며느리와 함께 놀러 다닐 수 있어서 마음에 드시나 보다.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아침밥을 먹고 추모공원을 방문해서 아버지를 뵈었는데, 예년보다 한산한 편이었다. 십 년 전 아버지를 떠나보내 드리면서 대성통곡을 한 장소인데도 이젠 슬퍼하지 않는 이런 담담한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슬프다. 슬픔도 세월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내 것이 아닌 모양이다.


아내와 의논한 뒤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행선지를 일광 바닷가로 잡았다. 유명한 해운대나 광안리 바닷가와 다른 분위기의 조그마한 해수욕장이다. 반짝이는 백사장에 텐트를 치는 사람들, 바닷물 속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이 보였다. 한가로운 풍경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통유리로 해변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맛보는 바닷장어 구이와 미역국이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해변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오징어를 말리는 풍경이 나타났다. 줄에 매린 오징어 뒤로 바닷속을 내려다보면 제법 큰 물살이 떼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내가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오징어 뒤로 낮게 떠있는 구름들이 배경을 맡았고, 구름 아래에서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조연을 맡아서 한 폭의 풍경화 완성에 한몫 거들었다.


일광에서 어머니가 사시는 대변항 쪽으로 해안 도로를 따라 주욱 내려오면 아담한 돌섬과 쪽빛 바다를 볼 수 있다. 아버지와 같이 낚시를 했던 돌섬이 보인다. 그리운 마음이 일어난다. 살아온 생을 전부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잠시 돌아가서 아버지를 보고 싶다.


몇 해 전, 신영복 선생의 삶을 존경하고, 쓰신 책에 심취해서 탐독했던 적이 있었다. 그중에 바다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바다는 모든 시내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름이 바다이다.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큰 물이다. 바다가 물을 모으는 비결은 자신을 가장 낮은 곳에 두는 데에 있다'


부산 해운대에서 태어나 늘 바다를 보며 자라온 내가 죽을 때까지 가슴 깊이 새기고 싶은 말씀이다.



사진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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