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에 입대했다. 경기도 의정부 306 보충대를 거쳐 9사단 신병 교육대에서 훈련받았다. 경계 근무만 선다는 101 여단으로 내심 가고 싶었는데 역시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 동안 고등학교 동문 선배들의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고무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들과 술 마시며 당구장에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덕분에 체력은 고갈되어 신병 교육대 훈련기간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고단한 신병교육을 수료하고 우리 동기들은 각자 남은 군생활을 수행할 부대로 배치받았다. 28, 29, 30 연대, 사단 직할대, 101 여단 등으로 나뉘었는데 수색대대로 배치받은 동기들의 안색이 몹시 어두웠다. 나는 사단 직할대 통신대대로 배치받았는데, 행정 착오인지 통신하곤 전혀 무관한 내가 왜 가게 되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육공 트럭을 타고 동기 둘과 함께 자대에 도착했다. 당시 통신대대는 중계, 운용, 유선, 본부 등 4개 중대로 편제되어 있었다. 동기들은 각각 중계와 운용 중대로, 나는 본부중대로 배치받았다. 본부중대는 나머지 3개 중대를 지원하는 운전병과 행정병이었다. 대대 행정실에서 전입 용무를 마치고 내가 지낼 본부중대 내무반으로 갔다.
내무반 문을 여는 순간, 기나긴 군생활의 서막을 알리는 신세계로 빨려 들었다. 무더운 날씨 속에 포경 수술을 한 최고참병이 비스듬히 앉은 채 인상을 쓰며 붕대를 감은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후임병은 부채로 열심히 선임병의 시술 부위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전입신고를 했다. 그것도 매우 우렁찬 목소리로!
"백마! 이병 000, 0000년 0월 0부, 전입을 명 받아 이에 신고합니다! 백마!"
신고가 끝나자 선임병은 고개를 끄덕이며, 총검술 시연을 지시했다. 나는 즉시 어깨에 멘 따불백을 내려놓고 K1 소총으로 기합을 넣어가며 총검술을 실시했다. 그날 저녁 점호를 마치고 잠을 청하는데, 군대에 온 것이 아니라 정신 병원에 수용된 착각마저 들며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눈을 잠시 붙였는가 싶더니 새벽이 밝아왔다. 푸르스름한 새벽 공기를 찢을듯한 기상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제 선임병이 일러준 대로 나는 막내로서 제일 먼저 연방장으로 뛰쳐나가 '기준'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그런데 어제 신고 온 내 전투화가 사라졌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아무 신발이나 신은채 뛰쳐나가 손을 높이 들고 기준을 외쳤다. 내가 신고 나간 전투화는 최고참의 것이었고, 그날 내 위로 많은 선임들이 얼차레을 받았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같은 날 밤에 내 바로 위 선임이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내가 오기 전까지 힘든 막내 생활을 하다가 나를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든 모양이었다. 종이쪽지를 건네주며 빠른 시일 내에 다 외우라고 한다. 쪽지에는 약 80 명의 중대원 이름과 계급이 적혀 있었다.
'공부하기 싫어서 군대에 왔는데 왜 이리 외우라는 것이 많은지'
암기에 약한 나는 밤에 잠도 안 자고 화장실에 쭈그린 채 라이터를 켜고 외웠지만 쉽지 않았다.
며칠 후 밤에 또 밖으로 불려 나갔다. 군기당번(당시 식기당번으로 불렸다) 상병 선임들의 암기 테스트 실시였다. 먼저 내 바로 위 선임들에게 외워보라고 하자 정말 모터를 단 기계처럼 쉴 새 없이 뇌까렸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까 발음이 좀 부정확해도 빠른 속도로만 끊기지 않고 말하면 얼추 될 것 같았다. 내 차례가 왔다.
"000 병장님, 000 병장님,....... 000 상병님, 000 상병님...., 000 일병, 000 일병....."
한참 가속도를 올려서 숨도 안 쉬고 열거하는 중에 상병 선임이 갑자기 그만하라고 한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또박또박 천천히 해봐!"
아아, 달빛 어린 연병장 넘어 꽃피는 군대 생활이 살며시 미소를 짓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