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에서 각국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를 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저마다 조국의 기대를 짊어지고 다른 나라 선수들을 이기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 못내 안쓰럽다. 상대를 이기지 못하면 내가 지는 스포츠 경기가 때론 잔인하게 보이고, 경기에 진 어린 선수들이 혹여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 때문에 법정 스님께서도 스포츠 경기를 '남의 불행 위에 나의 행복 쌓기'라고 하시면서 부정적으로 말씀하신 거 같다.
특히 북한과의 경기를 볼 때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일어난다. 일본과의 경기는 '가위바위보도 져선 안된다'는 누구의 말처럼,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북한은 좀 다르다. 분명 우리가 이겨야 할 상대는 맞지만, 남한 선수에게만은 져선 안된다는 북한 선수들의 애절한 표정을 보면 뭐라고 말하기가 힘든 심정이 된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여러 구기 종목에서 북한과의 경기가 있었다. 여자 축구, 농구, 배구, 탁구 등에서 맞붙었는데 정말 양 팀 모두 죽기 살기로 싸웠다. 네트를 중간에 치고 하는 경기는 조금 덜 하지만 서로 몸싸움이 불가피한 축구와 농구는 정말 치열했다. 특히 농구는 5년 전 남북한 한 팀으로 출전해 서로를 아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안면몰수하고 싸우는데만 집중했다. 최소한 경기전후 인사 정도는 하면 좋았을 텐데. 도대체 누가 선수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런데 역도만큼은 달랐다. 북한은 역도 강국답게 5 체급을 석권하며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했다. 여자 76kg 급에서 북한 선수, 송국향과 정춘희가 1,2등을 차지하고 우리나라의 김수현 선수가 3등으로 동메달을 땄다. 마지막 3차 시기에서 김수현 선수가 죽을힘을 다해 역기를 드는 장면을 보노라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시상식 후 세 선수 나란히 기자 회견을 하는데, 김수현 선수가 솔직한 마음을 얘기했다.
"림정심(북한의 국보급 역도선수) 언니를 좋아한다. 정심 언니보다 더 잘하는 두 선수와 경기를 하게 돼 영광이다. 목표를 더 크게 잡아 이 친구들만큼 잘해서 한 단계 더 올라가고 싶다"
김수현 선수 얘기를 듣고 두 북한 선수들도 굳은 표정을 풀고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김수현은 긴박한 순간에 몰래 다가온 북한 김춘희 감독의 응원이 있었다고도 말했다. 김춘희는 길러낸 제자들의 국제 대회 금메달 수가 60개가 넘는 명감독이다.
"수현아, 너한테 기회가 왔다. 너 될 거 같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라"
이념의 틀에 갇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냉혹한 현실에서 김춘희 감독과 김수현 선수의 진심이 식어가는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젊은 시절, 운동선수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부산수영중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학교명과는 달리 수영부는 없었고 역도부와 축구부가 있었다. 한날 체육 시간에 선생님께서 내 허벅지를 보시고 역도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특별히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천성적으로 허벅지가 굵은 편이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운동선수로 성공하는 것이 공부보다 열 배는 힘들다고 하시면서 만류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따금씩 역도를 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