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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Oct 13. 2023

기장 대변항

멸치털이

기장 대변항으로 본가가 이사를 간지 삼십 년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이곳저곳 이사를 많이 다녀 이골이 나있었지만 늘 내가 태어난 해운대 울타리 내였다. 해운대를 벗어나 외지로 가는 이사인 데다 당시만 해도 기장 대변항은 이름부터 께름칙한 매우 생소한 곳이라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다만 처음으로 내 집 마련을 하셨다는 부모님의 뿌듯한 표정을 읽고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사 당일 우리 가족은 새벽같이 일어나 전날 밤늦게까지 싸놓은 이삿짐을 밖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날이 차츰 밝아오자 이사업체 직원들이 오셨고, 온 가족이 달라붙어 그분들을 도와 타이탄 용달차에 짐을 실었다. 목적지인 기장 대변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송정을 거쳐야 하는데 아직 송정터널이 개통 전이라 달맞이 고개를 굽이굽이 넘어가야 했다. 고갯길 오른편은 낭떠러지라서 한가득 이삿짐을 실은 용달차는 뭍으로 나온 거북이걸음을 하였다.


달맞이 고개를 겨우 넘자 동해의 남쪽 끝인 송정해수욕장이 보였다. 송정 바다를 끼고 왼편으로 돌아 앞으로 주욱 직진해야 대변항이 나오는데, 좁은 이차선 찻길 양편으로 바다 같은 파밭이 펼쳐졌다. 가는 길에 해동 용궁사 이정표가 고즈넉하게 서 있다. 지금은 돈 냄새 풍기는 관광지 절처럼 되어버렸지만 당시는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 용궁사 앞에 있는 글귀가 이따금 생각난다. '너의 과거를 알고 싶거든 지금 네가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너의 미래를 알고 싶거든 네가 지금하고 있는 것을 보아라'. 한참을 달려 용달차가 대변항에 도착했다.


낯설었다. 늘 해운대 바다를 보고 자랐지만 대변항의 바다는 다르게 보였다. 조그만 항구에 작은 고깃배들이 밧줄로 묶여 정박되어 있었고, 육지와 바다의 경계가 없어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바닷물 속으로 빠질 거 같았다. 용달차는 옛적 포구 같은 항구를 뒤로 한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 가족은 언덕 위에 덩그러니 한채 서있는 신축 빌라에 도착했다.


방이 여섯 개나 있었다. 부모님과 동생 둘을 포함해서 다섯 식구였는데, 우리 세 남매가 방 한 개씩을 차지하고도 방이 남았다. 자식들이 각자의 방이 생겨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고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거실과 주방도 여태까지 살았던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널찍했다. 폭이 넓고 기다란 베란다에서 지척에 있는 대변항이 잘 내려다 보였다. 우리 가족은 처음 마련한 커다란 집에서 모처럼 행복에 겨워했다.


다음날 이삿짐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집을 나서 대변항 쪽으로 내려갔다. 비릿한 냄새가 온 동네를 휘감고 있었다. 항구를 바라보고 주욱 늘어선 영세한 가게 간판들은 온통 멸치와 미역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내 눈길이 머문 곳은 '멸치회'였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자주 만드셨던 수제비를 먹다가 가끔 멸치를 씹으면 인상을 쓰며 뱉었다. 그런데 그 맛없는 멸치를 회로 먹다니!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을 따라 죽성 방향으로 가는 해안도로 초입까지 걸었다. 시끌시끌하다. 예닐곱 명의 어부들이 조를 맞춰 노래를 힘겹게 부르며 멸치털이를 하고 있었다. 기다란 장화를 신고, 얼굴과 온몸은 멸치 잔해로 덮여 있었다. 장단에 맞춰 팔이 빠질 듯이 그물을 쉴 새 없이 털어내면 하늘로 솟구친 수많은 은빛 멸치 떼들이 공중제비를 하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멸치를 줍느라 거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분주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자식들이 모두 결혼해서 어머니 혼자 지내신다. 호텔이 들어서고 대형카페도 생기면서 옛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멸치털이 광경은 여전하다. 그리고 본가에 가면 가끔 어머니께서 멸치회를 해주신다. 채소와 양념으로 버무린 멸치회 맛이 일품이다. 이번 추석에 내려가서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대변항을 산책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반건조 오징어 구이를 발견했다. 가게 주인이 한 마리에 만원을 달라고 한다. 언제 이렇게 올랐는지. 어머니는 대뜸 나 여기 산다고 하시면서 이천 원을 깎으셨다.


사진 by 해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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