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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Oct 30. 2023

부치지 않은 편지

턴테이블

누구나 자기 세대를 대표하는 가수나 노래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노래와 함께 젊은 시절을 보냈다. 집이 좀 부유한 사람들은 전축을 들여놔 LP 판으로 음악을 감상했고, 형편이 안되면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들었다. 마음에 드는 노랫말을 받아 적으려고 몇 번씩 녹음기를 되감고, 그러다 테이프가 늘어나면 연필로 돌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중고 전축이 생겼다. 이종사촌 형님이 사용하던 것을 내게 줬다. 이모집에 놀러 가면 사촌 형님은 가끔 커다란 검은색 헤드셋을 낀 체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고, 그 전축이 갖고 싶었다. 이모부께서 새 전축을 사 오셔서 사촌형님은 더 이상 낡은 전축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당시 이모부는 원양 어선을 타셨는데 몇 달에 한 번씩 집에 오실 때마다 외제 물건을 잔뜩 사 오셨다. 일제 만화 시계, 잠자리 문양이 있는 짙은 녹색깔 연필,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연필깎이.


전축을 갖게 된 후부터 용돈을 모아 LP 판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레코드 가게에 빽빽하게 꽂혀 있는 LP 판을 바라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앨범을 꺼내봤다. 팝송은 감성적인 기타 연주로 시작하는 'POCO'의 'Sea of Heartbreak', 비 오는 날의 짙은 커피 향같이 허스키한 'Smokie'의 노래들. 가요는 그룹 '들국화'의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 그대와'를 듣고 또 들었다. 전축 다이아몬드가 자주 망가졌는데 레코드 가게까지 뛰어가서 사기 바빴다.


중고등학교 시절, 노래만 듣는 아들의 장래가 걱정되셨는지 부모님은 자주 잔소리를 하셨다. 중고 전축도 잔고장이 많이 나서 더 이상 제구실을 못하기 시작했다. 일단 대학부터 가야 한다는 생각에 남들처럼 암흑과도 같은 시기를 거쳤다. 그리고 마침내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을 다닐 때는 늘 김광석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등 좋은 노래가 많지만, 나는 '부치지 않은 편지'를 가장 좋아한다. 들을때마나 가슴속에 뭔가가 꿈틀거리며 나를 깨우는 거 같다. 송강호와 이병헌 배우가 열연한 영화 'JSA'에도 이 노래가 나오는데, 같은 민족의 젊은이들끼리 서로 총질하는 장면을 볼 때면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힘든 먹먹한 감정이 올라온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얼마 전 딸아이가 친구로부터 생일선물로 턴테이블을 선물 받았다고 하면서 좋아했다. 사춘기 시절 헤드셋을 낀 체 전축을 듣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딸아이에게 아빠가 좋아했던 노래들을 소개해줘야겠다.


사진 by 외동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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