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선생님 - 스펜서
학원 레벨테스트를 거쳐 인터미디어 클래스에 들어가게 되었다.
스펜서는 우리 반 선생님이었다.
영국 출신으로 이 친구도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와 있었다.
똑같은 워홀 비자지만, 누구는 가르치며 돈을 벌고, 누구는 돈 내고 영어를 배우고 있으니, 영어를 쓰는 이 친구가 마냥 부럽기만 했다.
여기서 간단히 스펜서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스펜서는 정말 재미있고 멋진(?) 선생님이었다.
독일 모델 출신의 아내(Katrin, 구글 검색해도 나올 정도로 독일의 유명 모델)가 있고, 아내와 함께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왔다.(지금은 이혼하고 다른 사람 만나서 잘 살고 있음)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되는 것이 꿈이며, 수업 시간에 스쿠버다이빙, 스노클링에 대한 이야기에 빠지면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다.
스펜서가 얼마나 스쿠버다이빙에 관심 있는지, 그의 수업을 참여한 학생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스펜서의 수업 시간은 항상 유쾌했다.
영어 발음 연습을 위해 발음하기 어려운 영어 문장을 랩으로 시키기도 했고, 문법 공부보다는 토론 수업이 많아 학생들이 스스로 참여할 수 있게 지도하였다.
일찍이 스펜서도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였기에, 언어를 배우는 데 무엇이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스펜서 수업 시간에 랩으로 연습했던 영어 문장>
간장공장 공장장은..과 같은 영어 통 트위스트 문장들이다
She sells seashells by the seashore
If we were Welsh, we wouldn't walk on wood
Lazy Rosie likes Ronald's lovely red roses
Red lorry, yellow lorry
I found a pound of fresh fish on sale for a pretty good price.
Sister Suzie softly sits slowly sewing soldiers' shirts
P, T, K, F, S, SH
What's better? Water or ale?
Two twisted witches watched two wristwatches. If two witches watched two wristwatches, which witch would watch which watch?
여기서 잠깐 스펜서의 독일 이야기를 해보겠다.
독일 유학 시절 스펜서는 독일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독일 축구선수 칸이 그 나이트클럽에 왔었는데, 칸은 맥주 하나 시켜서 맥주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스펜서가 칸에게 가서 한마디 했단다.
"이봐 칸! 너 게이냐?"
"뭐라고?"
"여기 고작 맥주 하나 마시려고 왔냐? 게이처럼?"
"뭐라고? 이 자식이 나를 뭘로 보고, 내가 오늘 여기 술 다 산다!!!"
하며 칸이 그날 나이트클럽에 골든벨을 울렸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해 스펜서는 가게에 매출을 올려 일 잘한다며 사장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스펜서의 말이라서 이 이야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으나, 스펜서는 이런 친구였다.
내 영어 듣기 실력을 의심해볼 수도 있지만, 내가 듣기로는 저렇게 들렸다.
<또 다른 스펜서의 독일 이야기 2탄>
한 번은 10대 여학생들이 스펜서가 일하는 클럽에 술을 마시러 왔다고 한다.
"우리 술집은 10대는 받지 않아. 저리가!!!"
"오빠, 한 번만 들여보내 주세요. 네? 한 번만 들여보내주시면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게요."
"그래?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한다고?"
. . .
그렇게 스펜서는 그날 10대로부터 원하는 걸 얻었다고 한다.
그가 무엇을 얻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스펜서는 이런 선생님이었다.
항상 유쾌했고, 우리들을 자극했다.
토론 시간에 주로 스펜서와 나누었던 주제로는 ‘나는 여자를 때려본 적 있는가?’ 혹은 대부분 야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곤 하였다.
이러한 유쾌한 주제로 수업 시간을 항상 즐겁게 만들었고, 이러한 시간을 싫어하는 학원 누나들도 있었지만, 내게는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처음엔 선생님이라는 한국적인 생각 덕분에, 나에게 욕을 해도 참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나도 스펜서에게 수업 시간에 욕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다.
스펜서가 이러한 분위기를 유도하며 한국적인 선생과 제자 관계가 아닌 서양적인 선생과 제자 관계란 무엇인지 보여준 것이다.
상관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를 깨달으며 선생님보다는 친구 같은 느낌을 갖게 해준 영어 선생님이었다.
수업 외에 그는 스쿠버다이빙을 공부하며 결국 스쿠버다이빙 강사 자격증도 땄다.
현재 그는 태국 푸켓에서 다이빙 강사로 활약 중에 있다.
바다 오염, 무분별한 상어 낚시 등과 같은 해양 보호에 관한 여러 가지 행사들을 기획하며 가끔 그의 일상을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스펜서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자주 하던 말이 있었는데 "That's life."
그게 인생이야~ 라며 그저 모든 일을 훌훌 털어버리는 스펜서, 그는 진정 멋진 선생님이었다.
That’s life -스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