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분주하다. 겨우내내 잊고 지냈던 베란다 한켠에 우두커니 서 있는 된장 항아리가 생각났다.그곳에는 내 인생 첫 2년간 담은, 된장이 보관되어 있다. 시아버님으로부터 뺏다시피 갖고온 항아리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집된장이 차곡차곡 잠자고있다
이민자의 삶이 그렇겠지만, 늘 고국을 그리며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어쩌면 더 한국적이고, 한국에서 보다 더 한국스럽게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과 무조건 한국어로 소통한다.다행히 식구들이 한국 음식들도 좋아하고 잘 먹는다.
고국의맛! 고향의 맛을 잊지 않고 지키고 싶었다. 겁없이 자신감만 앞세워 서툰 솜씨지만, 친정 엄마를 생각하며 장을 담아 보았다. 엄마 손 맛을 닮았으면 장맛도 좋을텐데 ...맛도보장 못하고 진행했던 첫 장 담기는 자신만만 했던 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된장 담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시작 했으니 끝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첫 장가리기 하던날이 생각난다. 소금물에 메주 덩어리를넣고, 가만히 50일~60일 정도 두면 자연스레 장이 되는줄만 알았었다. 아풀싸! 장독대를 여는 순간 당황했다. 마치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는듯 했다. 메주덩어리를 다 버려야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소금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메주들의 자태가 요상하게 알록달록 예쁘게 치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노랑,빨강,푸른 ,검정.흰,누런곰팡이들의 민낯을 보는 순간 나는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치 곰팡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짝을지어 축제를하듯, 춤을 추고 있는것 같았다.시겁을 하고 마구마구 걷어서 대야에 모았다. 곰팡이를 걷고 또 걷다 보니 거반 다 버려야할 기세였다.순간, 곰팡이라고 다 나쁜것이 아닐꺼란 생각이 났다.
다시 인터넷 선생님을 의지했다. 남들이 보면, 장가리기 하다말고 무엇 하나 싶었을게다. 인터넷을 찾고 또 찾아서 동영상을 보고 또보고를 반복했더니,내나이 50이 훌쩍 넘은 나이에 해는 뉘엇뉘엇 지는데 첫 장가리기를 마무리 했다.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장이다. 가족이 먹을려고 1kg 짜리 메주 5장으로 만든 결과다. 수고가 많았으니 주위 사람들과 나눌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K가 마음에 걸린다. K는 20년정도 영양학 공부를 했단다. 매주 토요일 '사랑방'이라는 곳에서 강의를 한다. 배운것을 재능기부 하는 멋쟁이 70을 바라보는 신사다. 나는 어르신들 20여분과 함께 K의 강의를 듣는다. 평소에 건강관리에 관심이 있어서 나는 K의 강의가 좋고 감사함으로 듣고 있다. 그리고 그 강의 가운데 비타민 C의 효능에 대해 듣고, 비타민 C 는 전세계에서 한국것이 최고이며, 영국산 원료가 좋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어르신들을 위해 비타민 C 주문과 배송에 대한 일들을 도와 드리고 있다.
K 는 몇차례씩이나 본인 가족이 먹을것을 사러 갔다가, 우리 것도 샀다면서 유기농 과일을 넌지시 건내곤 했다. 나도 뭔가 받기만 해선 안될것 것 같아 나눠야 할 마음이 들었다. 하여 내가 아끼는 집 된장,집 간장, 그리고 가을에 말려 놓은 유기농 방아잎을 가지런히 담아서 마음을 전했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것이 있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빚진자는 사랑을 베풀 줄 안다. 감사를 배운 사람은 곧 감사의 열매를 맺는다. 나누고 살면 더 풍요로운 삶이 보인다.황망한 이민의 삶 속에서 이웃과 벗하는 삶은, 우리들의 삶을 더 풍요롭고 윤택하게 하고도 남는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고운 인연들이 여럿있다. 앞으로 사랑의 빚진 자들 한사람 한사람을 '감사의 나눔으로 채워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