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서 텃밭을 가꾸며
4월도 열심히 달려 왔다.
한달에 한 번 있는 연휴가 시작 됐다.
성금요일과 이스터 먼데이에 데이케어는 문을 닫는다.
덕분에 귀한 쉼이 된다.
이쯤되면, 토론토에는 어김없이 봄이 온다.
늘 그렇지만, 빅토리아 데이까지는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언제 짓궂은 날씨가 시샘을 해서, 다시 눈발이 날릴지 모른다.
그러나, 도시 농부에게도 봄은 가까이에 왔다.
봄이 기지개를 켰다.
밖은 제법 쌀쌀한데 그래도 봄은 봄이다.
이 맘때부터 남편과 나는 바빠진다.
우린, 가족의 건강한 밥상을 위해서
봄부터 가을까지 유기농 텃밭을 자식처럼 보살핀다.
텃밭을 잘 일꾸어 나가기 위해서,
우선 우리 부부는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그래야 운전 못하는 내가 운전해서
텃밭까지 데려다 주는 남편에게 아쉬운 소리를 안해도 된다.
가능하면, 서로의 비위를 맞추도록 애쓰는 것이 남는 장사가 된다.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모 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목록을 정해 보았다.
첫째, 목소리 톤을 부드럽게 하도록 노력 해야한다.
둘째, 음식에 신경 쓰도록 노력 해야 한다.
셋째, 집안 분위기를 눈치껏 따뜻하게 하도록 한다.
넷째, 남편과의 시간 약속을 잘 지켜서 심기가 불편해지지 않도록 애써야한다.
다섯째, 말할때 맞장구를 쳐주고, 내키지 않더라도 한번씩 웃어도 줘야한다.
이것이 텃밭 사랑하는 우리 부부가 함께 하기 위해, 내나름 지켜야 할 일들이다.
텃밭에 다녀왔다.
쑥,미나리, 머위,부추가 살며시 얼굴을 내밀며 인사를 한다.
캐나다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초록이들이 대견하고 반갑다.
봄맞이 첫 건강 밥상은 다름아닌 민들레 묻침과 냉이국이다.
나는 민들레를 뜯고, 냉이를 캤다.
여기저기 삐죽히 올라온 억센 잡초들을 뽑았다.
밭 가장자리까지 파고든 쑥을 사정없이 호미질을하며 제거 했다.
금새, 쌀쌀한 날씨는 어데가고 , 온몸이 '후끈후끈 ' 땀이 났다.
호미질이 한창일쯤, 결혼 전 부모님과 밭에 갔던 생각이 스쳤다.
그때, 매번 밭에 가는 것이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힘이 들었다.
일하기 싫을때도 있었다.
그러나 불평하지 않고 부모님의 일을 도와야만 했다.
이미 그때도 내안에 있던 나는 어른 같은 아이가 되어 있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부모님을 도우랴’
잡초를 뽑으며 든 생각이다.
엄마 아버지도 일을 하기 싫었을때도 있었을 텐데,
내색않고 하신것은 순전히 자식인 우리를 위해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늦었지만 자식을 둔 어른이 된 지금에야 알게된 진실이다.
때로는 나도 솔찍히 일하기 싫을때도 있다.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고
스스로 마음을 추수리고 해야만 한다. 나도 엄마이기 때문이다.
고향 같은 텃밭이 있어 좋다.
그곳은 친정 부모님과의 만남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텃밭을 통해, 농부셨던 엄마 아버지의 숨결을 느끼고 추억을 마주 하게 한다.
그래서 텃밭은 내 마음의 친정집과 같다.아니, 친정집 같은 편안함과 함께,
그곳에 가면 친정 부모님의 얼굴이 그려지고 모습들이 생각난다.
어떨때는 말을 건내는듯 이것저것 알려주는 지혜도 있다.
몸은 피곤하고 힘들법도한데 텃밭에 가면 오히쳐 에너지를 받고 온다.
2025년 첫 텃밭 나들이를 했다.
기분이 참 좋았다.
역시나, 그곳에서 부모님의 얼굴이 그려졌고 목소리도 들어 좋았다.
상상속의 부모님인데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막내딸이라 오래 함께 하지 못해 늘 미안해 하시고 안타까워 하셨던 아버지!
냉이를 보자 친정엄마의 냉이국 레시피가 자동으로 떠 올랐다.
엄마가 냉이국 만드는 순서를 생생하게 기억나게 했다.
30여년만에 첨으로 생 콩가루를 묻힌 냉이국을 끓었다.
무우를 송송 채썰어 반듯이 한쪽에 넣고 집간장으로 간을 한 냉이국은 맛났다.
담백하며 봄을 담은 냉이! 향은 진하지 않았지만,
고향의 맛이자 엄마의 손맛! 그대로였다.
텃밭은 내마음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다.
그리고 부모님이 살아 숨쉬는듯 나를 반겨주고 만나주는 곳이다.
흙을 만지면 심신이 편안해 지고 고와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텃밭을 오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많은 날, 해가 '뉘엿뉘엿 ' 지면 하던 일을 '툴툴'털고 일어서게 된다.
올해도 다시, 도시 농부의 텃밭 사랑은 시작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