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두 어머니의 다른 응원

보호와 자립

by Go on

몇 주 째 한가한 사무실.

가끔 들어오는 손님도

구경 손님 또는 시장 상황을 묻는 상담 손님뿐이었다.

그날도 주연은 대표와 함께 사무실 앞 화단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들어온 20대 후반의 청년.

큰 백팩을 메고 뻘쭘하게 사무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시죠?"

"저... 집을 좀 보려는데요..."

주연은 속으로

'또 구경이구나. 오늘만 몇 번째냐...'

하지만 겉으로는 환하게 웃으며,

"매매로 보시나요?"

"... 네"


손님은 긴장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전 아무 때나 이사 와도 되거든요. 빨라도 좋아요."

"그럼 공실로 보여드릴게요"


구경 손님인 듯한 사람들에게는

세입자에게 집을 보여달라기가 너무 미안해서

공실로 나와있는 집들을 보여주곤 했다.

물론, 그것 또한 아무리 공실이라 하더라도 주인의 허락을 받고 보여줬다.

더군다나 손님은 중층 이상의 가장 싼 집을 보여달라고 했기에,

조건에 맞는 집은 공실밖에는 없었다.


집을 보러 가는 동안,

주변 입지에 대한 설명, 단지의 장점 단점을

줄줄이 설명해 줬다.

손님은 열심히 들었지만, 따로 메모를 하지는 않았다.

주연이 보여준 집은

준공 이후 한 번도 수리가 안된 집이었다.

하지만, 동과 층이 괜찮아서 수리만 한다면 아주 좋은 조건의 물건이었다.


주연은 집을 보여주면서,

손님이 앞으로 집을 보러 다닐 때에는

어떤 것을 중요하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손님은 집을 다 보고 난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하고 떠났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주연의 폰으로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며칠 전 집 보고 간 OOO입니다. 매수 의사가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그 집이 네고가 가능한지요?'


주연은 얼마까지 네고가 가능한 지 물어보려면, 원하는 금액을 미리 말해달라고 답장했다.

얼토당토않은 금액을 깎아달라고 하면, 계약은 성사되지 않을 것이었다.

손님이 제시한 금액을 주인에게 전달했고,

주인은, 매매바람이 꺾여있던 데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공실이라, 바로 승낙했다.


손님은 계약금의 일부를 주인에게 보냈고, 그렇게 계약은 성사되었다.


드디어,

주인과 손님이 만나서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


손님이 어머니와 함께 부동산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들이 온 날, 설명을 잘해주셨다고 해서 감사했어요."

주연은 속으로 찔렸다.

열심히 설명하긴 했지만, 속으로 또 다른 '구경 손님'일 거라 지레짐작했었기에 찔렸다.


"아들이 나한테 같이 집 보러 가자고 했었는데, 내가 그랬거든요.

네가 부동산에 들어가서 아주머니들한테 무시당해 보는 것도 나쁜 경험은 아니라고 했어요.

계약은 신중해야 하니까 일단 설명부터 듣고 와라 했어요.

그날 아들이 여기 오기 전까지 세 군데 부동산을 갔었는데,

아무도 집을 안 보여줬대요.

그런데 실장님이 집도 보여주고, 앞으로 집 볼 때에 주의할 것들도 알려줬다고 하더라고요."


"아... 어머님 대단하시네요.

대부분 자식들이 혼자 부동산을 간다고 하면

어머니들이 같이 오시거든요."


"난 우리 애들 그렇게 안 키웠어요.

작은 애도 유학 가고 싶다고 해서 지가 취직하고 알바까지 투잡 뛰어서 돈 모아서 갔고,

다 자기네가 알아서 하게 키웠어요. 그냥 애들이 잘 자라준 거지 뭐...

오늘 온 거는,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려고요."


손님의 어머니가 대단해 보였다.

그러는 와중에 주인이 들어왔다.

주인은 40대 후반의 남자였는데,

70대의 노부부가 아들 앞으로 사준 집이라

노부부도 같이 들어왔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주인은 잔뜩 예민해 있었고,

노부부는 안절부절못해 보였다.


계약을 진행하려고 테이블에 앉았는데

부동산 대표, 청년 (매수인), 주인 (매도인), 그리고 매도인의 부모인 70대 노부부도 같이 앉았다.

대표가 계약서 내용을 읽고 있는데,

노부부가 한 줄 한 줄 설명을 다시 해달라고 했다.

일반적인 사항이라 반복 설명이 필요 없는데도, 계속 묻고 또 물었다.

그때, 40대 후반인 아들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 나 참! 왜 따라 들어와서 참견을 해 참견을!"


너무나 급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당황했다.

주연과 청년의 어머니가 눈이 마주쳤고,

청년의 어머니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매도인 남자는 대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폭주했다.

"그지 같은 집 하나 사주고 생색들을 내요."


주연은 귀를 의심했다.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구나 싶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지금 부동산에서 할 말인가 싶었다.


그토록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과,

그런 아들 앞에서

아무 말 못 하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며칠 전, 청년은 계약금 중 일부인 5백만 원을 현금으로 가져오겠다고 했었고,

그에 대비해 매도인의 노모는

장바구니 속에서 오래된 쇼핑백 하나를 꺼냈다.

돈을 자신의 가방에 넣으려던 매도인에게

노모가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에 일단 넣어. 가방에 그냥 넣지 말고."

"아 놔... 진짜... 내가 알아서 할게!"


계약서 작성이 끝나자,

매도인 남자는 벌떡 일어나 그대로 나가버렸다.

노부부도 별 말없이 따라나섰다.


어머니는 아들이 매수한 집을 한차례 둘러보더니,

"잘 샀다. 열심히 일해서 대출 갚아 나가."

하며 살짝 웃었다.


주연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실수하거나 실패할까 봐

늘 먼저 답을 알려주곤 했었다.

아이들이 실패하면 절망하거나 좌절할까 봐,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꽃길만 주는 것이 엄마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주연 자신도 그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큰 좌절을 만났을 때, 용기 있게 해쳐 나오지 못하고 헤맸었다.

이런 경험 처음이라며

본인의 힘으로 빠져나오기보다 남들이 구원해 주길 기다리기도 했었다.


그때 지인이 주연에게 건넨 말에 큰 울림이 있었다.

'내가 어떤 어떤 일을 경험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보다,

'내가 어떤 일을 겪을 때, 그걸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라는 기도가

진정한 기도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일을 겪을 수 있다.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해봐야

면역이 생기고 이겨내는 힘이 생긴다.


내 자식에게만큼은 험한 일을 당하게 하지 말아야지 라는 마음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둔갑한다.

자식에게 꽃길만을 깔아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시간.

하지만 사랑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도록

조용히 지켜보는 용기였다.





이미지 제작 :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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