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문 앞에 선 마음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분주하게 청소를 하던 주연은
부동산 추천 매물에 떠있는 물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옆 단지의,
2년 전 특올수리 했던
최상급 상태의 집이
말도 안 되는 싼 금액의 전세로 나온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주연은 그 물건을 관리하는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응 실장님. 그 집 맞아. 주인이 싹 고쳐서 들어갔었잖아.
근데 주인이 사정상 빨리 빼야 한다고 내놨어. 손님 맞춰줘."
"아 혹시 주인이 해외로 나가야 하나요? 아니면 무슨 하자가 있는 건 아니죠?
너무 싼 가격이라서 깜짝 놀랐어요."
상대 부동산 사장은 살짝 뜸 들이더니 말했다.
"사실은... 손님들한테 설명을 해줘야 하니까 말할게.
그 집을 시집간 딸한테 친정아버지가 사준 거거든.
근데 딸이 이번에 자살을 했대.
그래서 얼른 매매든 전세든 빨리 빼달라고 하더라고.
지금 매매는 어려우니까 전세로라도 내놓는 거야."
헉...
자살이라니...
주연도 언뜻 봤던 여자였다.
매우 밝고 웃음이 많던 여자였는데, 자살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남편이 결혼하자마자 바람을 폈나 봐.
그래서 너무 속앓이 하다가 집에서 자살을 했대.
저번 주에 우리 단지 난리 났었잖아. 손님들한테 숨길 수는 없는 일이니까 잘 설명해 줘."
너무 안타까웠다.
최상급 특올수리에 좋은 가격의 전세물건이 나왔다고
손님들에게 문자를 돌려야 하는데
선뜻 내키지 않았다.
남들의 입방아에 오를 거 같아
고인에 대한,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출근한 대표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의외로 대표는 이런 일이 많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저번 달에도 우리 단지 16층에서 사람 떨어졌었잖아. 그리고 작년에는 2층 화장실에서 죽고...
얼마나 힘들면 죽었을까 하다가도... 죽은 사람도 불쌍하고, 남겨진 가족들도 지옥이지..."
대표는 덧붙였다.
"그래도 아파트는 그나마 나아. 재작년에 어떤 사장이 원룸 보러 갔다가 집 현관문을 열었는데 사람이 죽어있더래. 그 사장 바로 부동산 사무실 자리 싸게 넘겼잖아. 너무 충격을 먹어서 병원에 입원했었어."
아무 생각 없이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마주친 다른 사람의 죽음.
주연은 그 상황에 자신이 놓일까 봐 두려워졌다.
가끔은 노인들이 혼자 사시는 집에 방문해야 할 때가 있었다.
주인이 집을 내놨는데 세입자인 할머니가 전화를 안 받으신다고
부동산에게 방문 요청을 할 때가 있었다.
혹은, 노인의 자식들이 자신의 부모님이 연락이 안 된다고
부동산에게 방문해 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때 대표와 주연은 긴장했다.
만약 들어갔는데 돌아가셨으면 어쩌지.
그 장면을 맞닥뜨릴 자신이 없었다.
그런 요청에는 대표와 주연은 꼭 같이 갔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길 반복하다가,
주인이 알려준, 또는 자식이 알려준 비밀번호를 치고
현관문을 아주 살살 천천히 열고 밖에서 기다렸다.
"사모님, 사모님!"
귀가 어두워 못 들으실까 봐 큰 소리로 외치고 밖에서 기다렸다.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안방에서 아주 천천히 나오시는 노인들을 보면
너무 마음이 놓이고 긴장이 풀려 눈물이 나올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가끔은,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는 노인도 있었다.
무관심한 자식에게
골탕 먹이는 듯한 태도였다.
자식의 걱정을 형식적인 관심쯤으로 여기는 걸 볼 때면,
그들 사이의 유대가 얼마나 빈약한지 짐작되어
주연은 종종 놀라곤 했다.
어느 날, 102동 101호의 아들에게 또 전화가 걸려왔다.
주연의 부동산에 거의 매달 한 번씩 연락해 오는 그는,
이번에도 큰 감정 없이 말했다.
"어머니가 또 전화를 안 받으셔서요."
너무 죄송하다며 방문 요청을 했다.
대표와 항상 같이 방문했었지만,
그날은 주연 혼자 있었기에 빨리 다녀오기로 했다.
집 앞에 도착했고
혹시 몰라 긴장했지만,
안에서 새어 나오는 TV 소리에 마음이 놓였다.
"사모님, 계세요?"
초인종을 누르고 큰 소리로 외쳤다.
노인이 나왔고,
아드님이 전화해서 가보라고 했다고 와서 왔다고 하니,
주연보고 잠깐 들어오라고 했다.
처음으로 들어가는 그 할머니의 집.
차 한잔 마시고 가라는 말에
주연은 한사코 거절했다.
"사무실을 비워놔서 얼른 가봐야 해서요."
"그러지 말고 한 잔만 후딱 마시고 가."
커피포트 전원을 꽂으며 말하는 할머니의 부탁을 사양할 수 없어서
주연은 식탁에 앉아 기다렸다.
식탁 유리안에 빼곡히 껴있는 아들 내외와 손주들 사진.
그러고 보니, 냉장고에도, 벽에도,
아들 가족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아드님이 사모님 걱정 많이 하세요. 전화 꼭 받으세요."
주연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아들의 자랑.
갑자기 큰 앨범을 갖고 나오시더니,
아들의 대학 졸업 사진, 유학 시절 사진을 보여주셨다.
'큰일 났다... 사무실 들어가야 하는데...'
주연은 속으로 걱정하면서도, 할머니의 자랑을 다 들어주었다.
20분을 넘기는 손주 자랑까지 듣다가,
이젠 안 되겠다 싶어 일어났다.
"사모님. 아드님이 걱정 많이 하시니까 꼭 전화받으세요. 꼭요."
사무실로 돌아오니 대표가 들어와 있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니, 대표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자기야. 이제 저 할머니가 아들 전화 더 안 받을걸?
그래야 아들도 관심 주고, 우리까지 방문해서 차도 마시면서 얘기도 들어주니 말이야.
노인들 외로운 거 보면 참 마음이 그래.
우리도 일을 하니, 안 들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들어줄 수도 없고…"
"그럼 이제 어떡하죠? 아들은 계속 전화를 할 텐데요."
"내가 아들한테 말할게. 직접 가보라고. 아들이 해야 할 일을 우리가 계속해줄 수는 없잖아."
둘이 살다가도 죽고,
혼자 살다가도 죽는다.
죽음은 갑자기 오지만,
외로움은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우리가 대신 초인종을 눌러줄 순 있어도,
그 문을 열어야 할 사람은
결국 가족이었다.
이미지 제작 :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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