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내가 과연 이 일을 좋아하고 있는 걸까

사람을 겪으며, 나를 알게 된다.

by Go on

40대 후반에 처음으로 가진 직업.

평생 주부로만 살다가 공부해서 자격증 따고

그 자격증으로 취업한 직장.

주연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무경력자에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미지의 세계에 용기 있게 발을 디뎠다는 자부심,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쁨,

그런 감정들이 주연을 지탱해 줬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연 이 일을 좋아하고 있는 걸까.'


사치스러운 생각인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고,

감사해야 마땅한 수입이 있었으며,

그 덕분에 가족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조금씩 메꿔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가끔, 이상한 손님을 만나거나

상처받는 말을 들으면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이 와르르 무너졌다.


아무한테도 터놓지 못했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일은,

퇴근한 남편의 몫이 되었다.

남편도 하루 종일 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주연은 남편을 붙잡고 자기 넋두리만 하는

철없는 부인이 되어 있었다.


남편은 매번 들어주고 공감해 주면서도,

현실적인 얘기를 해줬다.

"누가 자기 일이 너무 좋아서 하겠어.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거지."

맞는 말이었다.

주연이 핑크빛으로만 생각했던 이 일은,

그저 주연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일 뿐이었다.


하지만, 감정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버티고, 참아내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다독였지만,

어느 순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이 일이랑 안 맞는 사람인가 봐.'

'나는 왜 이렇게까지 힘들까.'


사람을 많이 만나면

마음이 넓어진다고 했었다.

하지만, 주연은 반대였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주연은 스스로가 얼마나 좁은 사람인지

얼마나 작은 그릇인지 자꾸만 확인하게 되었다.


주연은 자신이 고를 수 있는 사람만 만나며 살아왔었다.

불편한 사람을 피할 자유가 있었고, 그게 주연의 '안전한 세계'였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그 자유는 사라졌고,

주연을 싫어하는 사람도, 무시하는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주연 앞에 나타났다.


사람들을 겪을수록 마음의 그릇이 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깊이가 얼마나 얕은지를 깨달았다.

경륜을 쌓아가는 줄 알았는데,

그저 '버티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내가 잘못된 건가' 자책하고

그럴수록 더 작아지는 자신을 느낀 건

꽤나 외롭고 지치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 나이에 이렇게 일하는 게 어디야. 배부른 소리 그만해'

스스로에게 또 외쳤다.

언젠가 이렇게 버티다 보면

하루하루 경험이 쌓여

주연의 성격과 생각은 바뀌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원래는 안 그랬어. 그런데 하다 보면, 다 하게 되더라."

다들 그렇게 말하는데,

정작 그렇게 되지 않는 주연은

그런 자신이 답답했고 못마땅했다.


주연은 그날도 그냥 하루를 견뎠다.

다가오는 날들도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그게 그때의 주연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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