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게, 제일 어렵다
'기본 / 상태 안 좋음 / 7월 중순까지'
몇 달째 전세가 나가지 않는 물건이 있었다.
처음에 저렴한 가격으로 매물이 떴을 때,
주연은 싼 전세만 찾는 손님들에게 문자를 돌렸더랬다.
그런 손님들은 많았다.
그래서 물건이 나온 초반엔
문의가 계속 들어왔고,
집을 보여주기 위해 예약 전화를 부지런히 돌려야 했다.
처음 그 집을 보러 들어갔을 때,
주연은 말문이 막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방문 앞에 놓인 여자 속옷이 눈에 들어왔다.
세입자는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었고,
속옷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손님이 보기 전에 얼른 집어 들어 세입자에게 건네주었지만,
그녀는 민망한 기색 하나 없이 속옷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펼쳐진 집안의 풍경은,
주연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거실 한가운데엔 커다란 빨래 건조대,
며칠째 널린 듯한 속옷과 양말이 엉켜 있었고,
싱크대 밑으론 반쯤 찬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네 개나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 곁에서 남편은,
이틀은 묵은 듯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거실 창을 열고 앞베란다 뷰를 보여주려다
주연은 다시 창을 닫았다.
베란다 한쪽에 쌓인 쓰레기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집은 절대 계약하지 않을 거야.'
손님의 얼굴에 그런 표정이 씌어 있었다.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발을 신고 인사하는데,
안방에서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두 딸이 나왔다.
세상에,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다니.
집을 보다 보면,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난다.
부동산에서 온다 하면
집 안을 정리해 두는 사람도 있고,
누가 오든 말든
잠옷 바람으로 소파에 누워 있는 사람도 있다.
그중엔 너무 깔끔을 떠는 사람도 있다.
슬리퍼를 신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고,
한 손엔 소독 스프레이, 다른 한 손엔 키친타월.
"스위치 누르지 마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중개사가 실수로 스위치에 손을 대기라도 하면
바로 소독제를 뿌려 닦아낸다.
티끌 하나 없는 집.
방마다 밀대가 세워져 있고,
곳곳엔 돌돌이가 대기 중이다.
"제가 열어드릴게요. 만지지 마세요."
니트릴 장갑을 낀 그녀는
철통 보안처럼 집안을 안내했다.
집을 보러 온 손님과,
낯선 이의 방문 자체를 불편해하는 세입자 사이.
주연은 그 사이에서 뭐라도 한마디 해야 했다.
"집이 참 깨끗하네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말을 받았다.
"먼지가 너무 싫어서, 집 보여주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 네. 얼른 설명하고 나갈게요."
갑자기 세입자는
묻지도 않은 식단 이야기까지 하기 시작했다.
"애 밥도 인스턴트 절대 안 먹여요.
우리 주변에 오염된 게 너무 많잖아요."
주연은 설명을 서둘러 마치고 나왔다.
그녀의 등 뒤로,
다시 소독 스프레이 소리가 따라붙었다.
청결이 중요하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한 얼굴로 사람을 대하고,
그 뒤에 소독제를 뿌리는 것.
그건 청결이 아니라, 불쾌였다.
물론, 그녀에게도 그런 방식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예민하다든지,
혹은 주연이 모르는 사정이 있었을지도.
그로부터 며칠 후,
그 깔끔 중독녀의 집에
다시 방문할 일이 생겼다.
예전에 다녀갔던 손님이
계약하겠다며 한 번만 더 보자고 한 것이다.
'이젠 소독 스프레이를 안 맞아도 되겠지.'
세입자도 마지막이라 생각했는지,
본인은 외출 중이라며
남편과 초등학생 딸만 있을 테니
보러 와도 된다고 했다.
집에 들어간 순간,
슬리퍼는 보이지 않았고
소파 위엔 남편과 딸이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바닥엔 햄버거를 먹은 흔적들이 떨어져 있었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두 사람의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좀 있으면 엄마 온다. 빨리 먹자."
그 소리에 주연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
뭐든, 적당한 게 좋다.
너무 더럽지도, 너무 깔끔하지도 않게.
그냥저냥,
서로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와 청결.
아이들이 자라
세상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 적당함이면, 충분하다.
이미지 제작 :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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