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잔금일의 민낯

by Go on

부동산의 수입은 오로지 수수료다.

운동을 싫어하는 주연이 하루 평균 4킬로 이상을 걷게 하는 힘도 역시 수수료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부동산.

집을 보여주면서도 한 달에 한 두 건 정도 계약할 때도 있었다.

경쟁은 치열했고 손님은 돌아다녔다.


보통 손님이 첫 방문일에 집을 계약하는 경우는

전체의 5 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계속 돌아다니는 손님에게

매물 정보를 보내주고

몇 번이고 집을 보여줘야

한 건이 성사될까 말까였다.

겨우 계약이 되어도 잔금일까지는 보통 두어 달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 사이에 손님과 주인사이에 서로 궁금하거나 요구할 것들을

친절하게 전달하는 것도 부동산의 몫이었다.


주인과 세입자 또는,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서

어느 한쪽이라도 기분 나쁘지 않게

내용을 거르고 다듬어서 전달했다.

계약을 한 당사자들은

늦은 밤 1시고 이른 아침 6시고 간에

아무 때나 부동산 대표와 주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궁금한 것들을 참지 못하는 손님들은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질문 폭탄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늦은 밤에 죄송하지만..."이나 "이른 아침에 실례인 줄 알면서도..." 같은 말은

기대하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매매 시장이 조용할 때에는

매도 물량이 쌓였다.

집을 빨리 팔아야 하는 주인들로서는

조용해진 시장 때문에 초조해져서

부동산에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 시장 상황을 물었다.


그러다 정부에서 갑자기 대출의 한도를 늘려주거나,

특례 대출 상품이 나오면, 상황은 또 급변했다.

집을 팔려고 내놨던 주인들은

갑자기 물건을 거둬들이기 시작하고,

그래도 빨리 팔아야만 하는 물건들만 남았다.


5개월 동안 성실히 보여줬던 한 집이 있었다.

드디어 그 집을 마음에 들어 하는 손님이 나타나
주연은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지금 집 보신 손님이 계약의사가 있으셔서요.

금액은 OO까지 생각하신다는데, 사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집주인은 반색하며 부인과 상의 후, 바로 연락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10여분이 넘어도 연락이 없자,

주연은 다시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음... 실장님도 알다시피 내가 다른 부동산에도 우리 집을 내놨잖아요."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계약을 할 것 같다고 그 부동산에 전화해서 얘길 했더니,

자기네가 더 비싸게 팔아주겠다네요. 거기도 손님이 있대요."

집주인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익숙한 패턴이었다.

손님을 데리고 다니며 현장을 정성껏 다져 놓으면,
꼭 뒤에서 다른 부동산이 치고 들어왔다.

물론 모든 곳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참 이상하게도,

단지마다 꼭 그런 부동산이 하나씩은 있었다.

결국 그 주인은,

5백만 원, 천 만원씩 매일 올리며
몇 달을 질질 끌다 매도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그 사이 시장은 다시 얼어붙었다.

주인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그때 그 손님… 아직 연락돼요?"

이미 그 손님은 주연의 부동산을 통해

다른 집을 샀다.


팔 수 있는 기회를 막은 건,
손님도, 주인도, 시장도 아니었다.

같은 부동산이었다.


또 다른 매도인은 수리되지 않은 1층 집을 몇 달째 팔지 못해 속을 태웠다.

가격을 내려도 반응이 없던 그 집은, 우연히 '1층만 찾는다'는 손님 덕분에

기적처럼 계약이 성사됐다.

잔금을 다 치르고 난 후 두 어달이 지났을까.

매도인이 연락도 없이 부동산으로 찾아왔다.

너무 싸게 판 것 같다고 했다,

그 스트레스로 젊은 시절 앓았던 심장 질환이 재발했다며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분당 서울대병원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그 집은 수리가 안된 기본상태의 1층이었기 때문에

그때 시세에 맞게 팔았다고 설명을 해도

매도인은 막무가내였다.

자기가 분당으로 올라오는 교통비, 서울대병원 진료비, 약값,

하루를 온전히 다 써야 하는 정신적 비용까지

모두 청구하고 싶다고 했다.


대표는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그럼 다른 1층보다 비싸게 파셨으면 우리한테 수수료 더 주시는 건가요?

그때 상황 다 말씀드렸고, 그래도 빨리 팔아야 한다고 했던 건 사모님이셨어요."

매도인은 노발대발해하며 심장을 움켜쥐는 퍼포먼스를 했다.

"내가 집 팔고 난 다음에, XX부동산이 나한테 전화를 얼마나 했는지 몰라.

왜 그 가격에 팔았냐고. 다음엔 절대 여기랑 거래하지 말래."


대표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그럼 사모님. 어떻게 해드릴까요?"


"중개수수료 반 돌려줘요."

돈을 돌려받지 않으면 절대 이 부동산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말했다.


결국 대표는 받았던 중개수수료에서 반을 돌려줬고,

매도인은 "병원 가봐야 한다"며 빠르게 나갔다.


그런가 하면, 계약일부터 잔금일까지

대표와 주연에게 수십 통의 문자를 보냈던 신혼부부가 있었다.

싫은 내색 없이 답장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지만,

막상 잔금일, 수수료를 내야 하는 날이 되자

갑자기 설명을 못 들었다며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분명히 설명해 줬고 문자도 보냈지만, 문자를 못 봤다고 억지를 부렸다.

대표는 침착하게 본인 폰에서 문자를 찾아서 보여줬다.

그러니 그들이 하는 말,

"근데요. 그걸 설명하실 때, 대표님 말투가 조금 거슬렸었어요."

대표와 주연은 할 말을 잃고 그들을 쳐다봤다.

결국, 수수료를 깎아달라는 얘기였다.


잔금일에 수없이 벌어지는 일.

누군가는 정중히 부탁하고,

누군가는 억지를 피우며 누명을 씌웠다.

큰돈이 오고 가는 부동산.

모두가 예민해 있다.

누군가는 싸게 팔아서 화가 났고,

누군가는 비싸게 사서 억울했다.

그 중간에서, 주연은 늘 조심스러웠다.

어느 한쪽의 편도 아니면서,

그 누구에게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리.

그 틈에서 감정을 조율하고, 말끝을 다듬는 것이 주연의 일이었다.

수수료보다 더 중요한 건,
손님의 마음을 조율하고, 받아내는 일이었다.




이미지 제작 :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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