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가끔 엄마가 생각날 때

미워도, 추억은 흐려지지 않는다

by Go on

주연은 엄마와 절연을 했다.

엄마는, 집안을 폭싹 망하게 하고

주연에게까지 사기를 친 남동생의 편을 들어줬고,

결국 그 후로 주연은 엄마와 연락을 끊어버렸다.


어언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부동산에 앉아있을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할머니가

혹시 엄마면 어떡하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가끔 부동산에 들어와

소싯적 잘 나갔다는 말을 하며

의미 없는 허세를 부리는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주연은

나의 엄마도 저러고 다니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쓸쓸했다.


사기 사건 전까지의

엄마와의 기억은

주연에게는 '그리움'이었다.


주연에게 그렇게 아픔을 줬던 엄마였지만,

엄마와의 추억은 문득문득 아무 때나 찾아왔다.

그렇다고 엄마가 온전히 그리운 건 아니었다.

너무나도 아픔을 줬기에

다시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주연의 과거였다.


어느 날, 40대로 보이는 여자 손님이 70대의 할머니를 모시고 들어왔다.

참 정갈해 보이는 할머니와 곱게 생긴 여자 손님은 모녀 관계였다.

더위에 지친 엄마가 혹시나 쓰러질까 봐

딸은 집에서 갖고 나온 대추차를 얼른 꺼냈다.

주연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멍해졌다.

'나도 저랬었지.'

어릴 적 감기라도 걸리면

엄마가 챙겨주던 대추차, 생강차를 기억하며

주연이 컸을 때

엄마에게 직접 끓인 미역국을 들고 갔던 어느 날,

엄마가 맛있다며 연신 숟가락을 들었던 그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랐다.

지금은 어디에도 없는 그 시간.

'왜 그게, 이렇게 오래 남는 걸까.'


모녀와의 대화를 들으며, 주연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마곡동에 살고 있지만, 딸이 있는 분당에 살고 싶어서

집을 알아본다고 했다.

딸은 할머니의 한쪽 팔을 잡고 부축해 드리며 말했다.

"수리가 잘된 집이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연세에 수리업체에 의뢰하기엔 너무 힘드실 거 같아서요."


딸은 진심으로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다.

주연은 수리가 잘된 집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마음에 드는 집은 없었고,

그 후로 할머니는 여러 번 방문했다.

항상 할머니는 딸과 미리 약속하지 않고 그냥 부동산에 들어와서 딸에게 전화했다.

"나 부동산 왔어. 얼른 와."

"엄마. 맨날 그냥 오면 어떡해. 나도 스케줄이 있어. 애들 학원 데려다줘야 해."

딸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래. 나 혼자 다닐 테니 신경 쓰지 마라. 그런데 애들 학원은 혼자 가면 안 된대니?"

날카로운 할머니의 말투.


결국 딸은 부랴부랴 부동산으로 왔고,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할머니 옆에 앉았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주연은 딸의 입장이 이해가 갔다.


"다음에는 엄마 오신다고 하면, 저한테 미리 연락 주세요."

주연에게 따로 부탁을 하는 그녀에게, 주연은 말했다.

"어머님이 연락을 안 주시고 그냥 오신 거라서요."

주연은 미소를 띠며 할머니를 보고 다시 말했다.

"사모님. 다음에 오실 때에는 미리 연락을 주세요. 그래야 집 보실 수 있게 저희가 준비하거든요."


이미 모녀는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고,

그런 둘을 데리고 다니며 집을 보여주는 주연은 죽을 맛이었다.


할머니는, 저번에 봤던 집이 아무래도 제일 마음에 드는 것 같다며

다시 보여달라고 했고,

결국 할머니는 그 집을 보고 나오며 계약의사를 밝혔다.

이제 부동산으로 가서 설명을 해드리겠다고 하는 주연의 뒤로,

갑자기 할머니는 아파트 계단에 주저앉아버렸다.


"나 못 가겠다."

딸은 당황해하며 할머니에게 어디 아픈 거냐고 물었다.


"너 아까부터 나한테 태도가 그게 뭐니?"

계약을 앞둔 할머니는 딸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얼굴이 벌게진 딸은, 미리 약속을 하고 오라는 말이 그렇게도 서운했냐고

할머니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주저앉으면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창피하니까 일어나라고 했다.

"내가 창피하니?"


딸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주연은,

할머니를 부축해드리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사모님. 여기 앉아계시는 것보다 저희 부동산에 가서 앉으세요. 여기 너무 더워요."

설득 끝에 할머니는 일어났고, 딸은 계속 눈물을 닦았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계약은 진행됐고,

딸은 중간에 집에 가봐야 한다고 일어났다.

쳐다도 보지 않는 할머니.


'뭐가 그렇게 서운했을까.'


며칠 후,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

계약서 작성일을 미리 고지했기에,

딸은 늦지 않게 부동산에 도착했다.


그런데 모녀는 며칠 전의 분위기보다 훨씬 더 냉전상태였다.

할머니가 집을 계약하기 전의 부동산 방문 횟수는 총 5번이었고,

딸은 그때마다 헐레벌떡 달려와서 할머니를 부축해서 집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할머니는 무엇 때문인지 딸에게 단단히 화가 나있었고,

그건 딸도 마찬가지였다.


계약서를 꼼꼼히 설명하던 대표에게

토시 하나하나 다 물어보던 할머니는

갑자기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어 난데... 지금 부동산인데... 혹시 시간 되니?
아니, OO는 지금 옆에 있는데, 그래도 너한테 물어보려고."

아들에게 전화하고 있었다.


딸은 눈을 지그시 감았고,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아들에게는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로 얘기했고,

바쁘니까 빨리빨리 말하라는 아들의 말에

심지어 말까지 더듬었다.


계약서 작성이 끝났고, 딸은 휙 나가버렸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매우 괘씸한 얼굴로 바라보며 딸의 흉을 보기 시작했다.

애들 학원을 너무 많이 보낸다는 둥... 손주가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도 않는데

딸 부부가 너무 공부 공부 한다는 둥... 자기는 마곡동 집 팔면 아들한테 줄 거라는 둥...


주연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 땡볕 속을 몇 번이나 함께 다닌 건 딸이었는데,

굳이 부동산 아줌마에게까지 딸의 흉을 말해야 했을까.


그때, 엄마가 또 생각났다.

'엄마도 저러고 다니겠구나.'

'기껏 키워놨더니,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얘기하겠지.'

'듣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내 욕을 하겠지...'


주연은 마음이 저려왔다.

원망과 그리움은, 늘 함께였다.

자신을 버리고 끝내 아들만 챙겼던 엄마였지만,

된장찌개, 계란찜, 시원한 나박김치...

그 시절 엄마를 가장 자주 떠올리게 하는 것들...

그런 음식 앞에 서면, 늘 엄마가 떠올랐다.

그럴 땐 원망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감정이 밀려왔다.

엄마를 잊은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미지 제작 :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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