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졌기에, 나는 비로소 바로 설 수 있었다
한때는 모든 게 무너지는 줄 알았다.
주연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대부분의 유산을 남동생에게 몰아줬다.
그 결정은,
결국 모두를 무너뜨렸다.
법무사 사무실에 셋이 모였던 날,
엄마는 주연에게 인감증명서를 요구했다.
그리고 준비해 온 종이를 툭, 내밀었다.
“자세히 볼 것도 없어. 우리 집은 OO가 잘 돼야 하니까.”
불공평하다는 말 한마디 못한 채,
인감증명서를 꺼내든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엄마 마음 편하게 하려면 네가 좀 따라줘라."
그 한마디에,
아버지의 땅과 주식, 회원권, 그리고 부모님이 살고 있던 집까지
모두 남동생이 상속받기로 했다. 주연에게 남겨진 것은, 오피스텔 한 채뿐이었다.
“엄마, 이 집은 왜 OO한테 줘? 엄마가 가지고 있어야지.”
“주는 김에 그냥 한 번에 다 주는 거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딸이 최고'라고 말했던 엄마는 온데간데없었다.
엄마는 아들을 남편 대신 가장으로 삼았고,
남동생은 그 모든 걸 날렸다.
주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동생을 믿고 투자했던 돈을 모두 날리고,
결국 집까지 팔아야 했다.
그때는 정말, 끝인 줄 알았다.
삶은 허물어졌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 일이, 인생 최악의 사건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렀다.
주저앉던 날들이 지나고, 주연은 책상 앞에 앉았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고, 그 첫걸음이 그녀를 바꿔놓았다.
부동산에서 마주하는 진상 손님들을 보며,
주연은 문득 돌아보게 됐다.
'나도 혹시, 다른 사람에게 저런 사람이었을까?'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혹여나 주연이 흘린 무심함이
지금 주연에게 돌아오는 벌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반성했고, 되돌아봤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주연은 안다.
어떤 날에는, 그 한마디가 하루를 버티게 해 준다는 걸.
"감사합니다."
미소와 함께 들었던 그 짧은 인사는
주연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주연도,
언젠가 자신이 건넨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작은 쉼이 되기를 바랐다.
부동산에서 진상 손님들에게 부당한 일을 당할 때면,
남동생과 엄마를 떠올리며 분노했었다.
그 일만 없었다면
이 사무실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이런 대접도 받지 않았을 텐데.
주연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때문에"라는 말은
그녀를 멍들게 하고,
고통의 늪으로 끌어당겼다.
앞을 보고 나아가려 해도
그 "때문에"라는 생각이
끝없이 발목을 잡았고,
어제의 분노에 오늘을 빼앗기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쁜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누워
폰을 켜고 이것저것 읽던 중에
글귀 하나가 주연의 눈에 들어왔다.
"무엇을 두고 왔는지에 집중하다 보면
앞에 무엇이 있는지를 볼 수 없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정말 모든 게 그 사람들 "때문에"일까.
어쩌면 "덕분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벌어진 일이라면,
언제까지 탓만 하고 있을 것인가.
차라리 그 덕분에 자신도, 가족도 조금은 더 단단해졌다고 믿기로 했다.
주연은 그렇게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
저축에 관심 없던 삶도 조금씩 달라졌다.
부동산에서 만나는 손님들을 통해
경제 흐름과 뉴스에 귀 기울이게 되었고,
그 손님들을 상대하려면
본인도 계속 공부해야 했다.
듣는 음악도 달라졌다.
'마음의 평화'라고 제목을 지은 플레이리스트에
성가와 클래식을 담았고,
그 노래들이 출퇴근길 주연의 마음을 감쌌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던 주연은,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무너진다는 걸 깨달았고,
탄천을 걷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달라졌다.
용돈을 기다렸던 아이는 알바로 등록금을 보탰고,
큰아이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다.
가족 모두가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 일은 여전히 지우고 싶은 아픔이다.
하지만 지금의 주연은 말한다.
그 일이 있었기에,
우리는 자랐고 내 인생은 바뀌었다고.
그 일은, 결국 좋은 일이 되었다고.
세상은 참 묘하게도,
가장 아픈 날들이 가장 큰 깨달음을 데려다준다.
그날 무너졌던 삶의 폐허위에,
주연은 가족과 함께 다시 집을 지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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