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저는 지금까지도 그 녀석이 많이 미운 것 같습니다.
J에게 처음으로 말 붙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지만, 그 이후의 모든 것은 다 원망스러울 뿐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녀석이었고 함께 알고 지내는 친구들 무리가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흡연장에서, 현장에서 오며 가며 마주치던 J를 흘깃거리는 놈들은 많았지만
그중 하나가 인석일 줄 모르고 있었다니, 여자 취향이 겹쳤던 적은 없었는데 너무 방심을 했나 봐요.
그럼, 두 분이 동시에 J를 좋아하시게 된 건가요?
/하하, 네. 그런 셈이죠.
한 여자를 두고 오랜 친구 둘이 싸운다는 거? 저에겐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언제나 사랑보다는 우정, 가족보다도 우정이었으니까.
그 녀석 워낙 둔해서 지금도 모르고 있겠지만요.
걘 항상 그랬어요. 일은 저지르고 보고, 나중에 해결하면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성격이요.
J에게 먼저 들이대고, 고백도 하고, 사귀어보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마음이더군요.
J는 수줍은 여고생이라도 된 듯 지나가는 복도에서 얼굴을 붉히기도 했었고
스치듯 마주친 눈동자에서 저를 지나쳐 그 녀석을 바라보는 눈빛엔 웃음이 묻어나고
전해 들었던 말론, 그런 J가 본인도 낯설다고 할 정도로 처음엔 얼마나 쌀쌀맞았는지 모른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 그런 첫사랑을 마주하는 기분.
마음이 아프셨겠어요.
우정이 항상 우선시되던 분이라고 하셨지만, 뺏고 싶은 마음이라던가, 욕심이 난다던가 한 적은요?
/욕심도 났고, 뺏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잠깐 이러다가 말겠지.
이러지 말아야지. 친구들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
다그치면서 지내길 3개월 정도 되었을까.
그 녀석은 J에게 고백을 했고, J는 대답 없이 피어싱 가게로 제 친구를 데리고 갔고, 귀를 뚫고는
그 뒤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고, 대답을 기다리기도 민망하다며 J를 욕하기도 했어요.
그 두 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들으셨나요?
왜 J는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요?
/저도 그 내용은 아직도 듣지 못했답니다.
J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지만 눈은 슬펐고, 뒷모습은 외로워 보였습니다.
회식 날까지 J는 그렇게 괜찮은 척했지만, 결국 그날 J는 제게 눈물을 보였어요.
"난 너네들이 외로울 때, 옆에서 웃어줄 사람이 필요할 때, 그럴 때 찾으라고 있는 사람이 아니야!"
이게 J의 대사인가요?
아주... 당돌하시네요. 고슴도치 같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하고.
/맞아요. 그 녀석이 왜 대답을 듣지 못했는지, 대강 짐작은 했지만 찔러보는 듯한 태도에 상처를 받은 듯했죠.
저는 그 회식에 가지 않았거든요.
공장의 아주머니들이 잡은 회식 자리여서, 여자들이 많다 보니 저는 집안일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고, 친구는 J를 사적인 곳에서 마주치기 껄끄럽다며 일찍이 자리를 떴어요.
같은 기숙사를 쓰던 놈이, 술을 좋아하는 녀석이 술 한 모금 마시지 않고선 운전을 하고 돌아온 걸 보고
차라리 그런 자리에서, 두 사람이 술을 두고, 다시 마음을 맞출 기회가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다.
안심하는 제 모습이 웃기고 씁쓸했어요. 유치하다 안 준.
J는 술을 못 하는 편입니다. 소주 한 잔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그런 J가 술에 잔뜩 취해서 저한테 전화를 하더라고요.
밤 12시가 다 되어서 걸려온 전화 속 목소리는 슬픔과 원망이 한 데 뒤섞인 어리광에 가까웠어요. 달래 주어야 하나?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러면서도 당차고 똑 부러진 말투가 예뻐 보였어요.
대중교통도 다 끊긴 늦은 시간, 늦은 시간이라 J는 집에 갈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집안일을 핑계로 회식을 뺀 저로서는 데리러 갈 수가 없었어요.
친구에게 J를 데리러 가보라고 말했습니다. 회식을 빼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데러리 갔어야 하는데.
결국, 친구분이 J를 데리러 가셨나 봐요.
같이 계실 때 통화를 같이 들으셨겠죠?
/맞아요. 겉옷 하나를 입고, 다른 하나를 더 챙겨서요.
씁쓸한 표정을 짓는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가득하다. 후회로 남은 지난날들과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한 미련이 눈시울에 맺힌 듯했다. 그의 말솜씨나 언변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이야기를 듣는 나는 점점 그날의 일에 함께 했던 사람인 양 빠져드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가끔 영화나 노래에 심취하는데 보통 그 이야기를 직접 겪은 작가에게 매료되는 편이다. 나는 아직 그런 깊은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도대체 어떤 사랑을 주고받았으면 저런 글을 쓸 수 있으며 사랑했던 이에 대한 일을 남기고자 했는지 가늠할 수 없다.
나는 언제쯤 그런 사랑을 해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