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안녕하세요. 잘 찾아오셨어요.
앉으세요. 커피 드릴까요? 따뜻한 라떼 괜찮으세요?
에스프레소 머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커피를 추출한다. 깊고 진한 향을 뽐낸다.
어수선하게 정리된 빌라 한 켠의 소파에 앉아 녹음기와 펜, 노트를 테이블에 올려둔 채
남자와 커피를 기다린다.
짝이 맞지 않는 나와 남자의 커피 잔.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의 남자가, 혼자 사는 집에 예쁜 식기를 세트로 갖고 있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잠시. 나는 감사 인사를 건네고 뜨거운 라떼 한 모금을 식도로 흘려보낸다.
가닥가닥 보이는 새치에 대비되는 새까만 머리카락과 짙은 쌍꺼풀에 덮인 밝은 갈색의 눈동자가 눈에 띈다. 그다지 크지도 그다지 작지도 않은 키, 반팔 소매가 걷히면 드러나는 그을린 피부의 경계선, 굳은살 박인 거칠고 두툼한 손가락, 눈썹 미간에 깊게 자리 잡은 주름. 이 남자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또, 인생의 어떤 순간에 J를 만났고 어떤 순간에 J를 떠나보냈을까?
남자의 초점은 일렁거리는 커피의 크레마 거품에 고정되어 있다. 이 남자에게 J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침묵이 흐른다. J에 대해 입을 떼기가 망설여지는 듯하다. 나는 궁금증을 누르고 침묵이 깨지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크레마, 이 고운 거품을 보려고 한여름에도 에스프레소만 마시게 되네요.
크레마요? 원두를 좋은 것으로 쓰시나 봐요.
크레마를 보면 알 수 있다던데요.
/하하, 네. 너무 옅으면 문제가 있는 게 맞긴 한데 원두의 품질을 판가름하긴 어렵다고 해요.
J가 카페에서 일했을 때 크레마가 예쁘게 나오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었어요.
J를 만나기 전 까지는 커피가 다 거기서 거기인 줄로만 알고 살았는데······.
이런 어수선한 집에 커피머신은 있다는 게··· 웃기지 않나요?
나는 대답을 찾기 어려워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커피머신은 J가 좋아했던 제 모습이고 질서 없는 이 집은 저 같아요.
예쁜 커피잔은 J예요. 이곳에 어울리지 않죠.
두 분은 어디에서 처음 만나셨나요? 카페?
/아뇨, J랑 정말 안 어울리는 곳이었어요.
언제, 어디서 처음 만나게 되신 거죠?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J가 알면 정말 싫어하겠지만, 저희는 시골의 어느 공장에서 만났어요.
그때는 정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J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죠.
공장이라면, 어떤 걸 만드는 곳이었나요?
/식품가공품 공장이었어요. 지금도 있는 공장이에요.
그땐 되게 보잘것없는 비전 없는 중소기업 시골 공장이었고, 지금은 나름 큰 기업에서 인수한...
저는 일 한지 3년쯤 되었을 때였고, 생산설비 기계를 담당하는 기사였습니다.
그럼 그때 나이가 어떻게 되셨어요?
/J는 22살, 저는 29살이던 해의 가을이었습니다.
떠밀리듯 먼 타지로 와서, 그런 곳에서, 그런 사람을. 꿈에도 몰랐죠.
아직도 J가 면접 보러 온 그날을 잊지 못해요. 아주 짧은 단발머리에, 잔뜩 긴장해서 면접에 어울릴만한 신경 쓴 듯한 옷차림. 글자 그대로 '사회초년생'이라는 타이틀이 아주 잘 어울리는 모습이 귀여웠어요. 기껏해야 이런 작고 허름한 공장인데 저렇게도 긴장을 했을까.
점심식사 후, 흡연실에 모여 앉은-어리고 늙은-사내들은 J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그 얘기에 끼고 싶지 않아서 저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어요. 나이는 몇 살 인지, 키는 꽤 크던데, 야아 키만 큰 게 아닌 것 같던데 뭘, 키득키득 거리며 저급한 눈썰미를 자랑하던 놈도 있었죠.
남자친구는 있을까? 귀만 쫑긋거리던 사람들까지 있을 걸? 없으면 좋겠다. 없는 게 이상하다. 결혼을 했을지도 모르지! 저마다 한 마디씩 던졌고 저는 속으로만 없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한 표를 던졌었죠...
J는 저를 못 봤지만 저는 J를 계속 보고 있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J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휴게실에 앉아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한 채로 귀에는 이어폰이 끼워져 있었거든요.
뭘 보며 뭘 듣고 있을까? 궁금했어요.
J는 왜 그런 시골에, 왜 그런 공장에 가게 됐을까요? 안 준 씨는요?
두 분은 언제 처음으로 대화를 하셨어요?
/저도, J도 애연가라서 흡연장에서 자주 마주쳤어요.
그 시골은 저에게도 완벽한 타지였고, 그런 타지에서 혼자 지내는 친구를 보며 저도 무슨 바람이었는지 무작정 면접을 보고 같이 일을 하게 됐죠. 그때 그 녀석이랑 기숙사를 같이 쓴 게 첫 독립이었고요, 지금 이 집이 제 첫 자취방인 셈이에요. 본가에서 평생을 붙어살았어요.
처음 대화를 나눈 건 제 친구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