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태운 건 나의 옛 이름이며
나의 지난 모든 날들이며
앞으로 정해진 듯한 나의 어두운 앞날이며
내가 가야 할 험한 길로 안내하는 지도 같았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다 했는데도
도망가고 싶었다.
그렇게 도망쳐온 이곳은 과연 낙원은 아니려나.
그리고 참 우습게도
내 가장 창피한 나의 모습은 늘 당신과 함께 했더라고.
그것들이 활활- 잘 타서 재가 되어 날아가도록
옆에서 바람도 불어주고, 불씨도 넣어주었던 당신이
저렇게 쪼그려 앉아 매운 연기 마셔가며 곁을 지켜주었던 모습을 보노라면
내가 어찌 그런 당신을 두고 멀리 떠날까
어느 방향으로 도망갈 수 있을까
목적지도 없이 달아나서 당신을 잊을 수나 있을까
당신은 나를 잊고 산대도 내가 당신을 감히.
당신이 라이터로 불을 붙여준 그날이 생각나서
눈에 아른거려서
한 걸음이나 쉬이 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