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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장점이 운전잘한다고 썼을 뿐이데, 팀장이 삐졌다

피드백은 조그만 진심과 외교가 필요하다

by 영보이 삼

내가 팀원으로 있을 때, 당시 팀장이 갑자기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요청한 적이 있다.

“내 장점 10가지, 단점 10가지 좀 적어줘요.”

그리고 그걸 조용히 한 여직원에게 모아서 전달해 달라고 했다. 약간 비밀 투표 느낌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 팀장의 장점을 10가지나 적는 건 꽤나 어려운 미션이었다.

그래서 나는 ‘장점 겸 단점’ 시리즈로 돌파했다.


“숫자에 밝다” “숫자에 너무 집착한다”

“결정이 빠르다” “너무 즉흥적으로 결정한다”


이런 식으로 양면성을 강조(?)하며 겨우겨우 채워나갔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 칸이 남았다.

도저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그래서 생각난 게 있었다.

예전에 회식 가던 날, 팀장 차를 같이 탄 적이 있었는데 막히는 길을 피해서 아주 능숙하게 길을 바꾸며 운전하던 모습. 그 순간이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면 “운전을 잘한다”는 진심 어린 칭찬이라기보단… 정말 쓸 게 없어서 떠오른 유일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회식 자리에서 일이 터졌다.

술이 좀 오른 팀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누가 내 장점에 운전을 잘한다고 썼대. 내가 얼마나 장점이 없으면 그런 걸 썼겠냐고…”

그 순간, 아… 걸렸구나 싶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누군가 면전에서 “내 단점 좀 말해줘”라고 할 때, 정말로 단점을 말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나도 한 번, 팀장의 요청에 따라 “솔직한 충고”를 드렸다가 며칠 뒤 아주 소소하고 정성스러운 후폭풍을 맞은 적이 있다.


그때 알았다.

진심 어린 피드백이 항상 좋은 반응을 낳는 건 아니라는 것.

솔직해도, 듣고 싶은 말이 아니면 상처만 남는다는 것.


그럴 땐 이렇게 말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팀장님(또는 본부장님, 사장님), 너무 업무를 잘 아셔서 밑에서 일하는 입장에선 조금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다. 진심 반, 외교술 반.


피드백은 관계를 위한 도구이지, 자존감을 시험하는 리트머스지가 아니다.

피드백을 받고 싶다면 듣기 좋은 말이 아닌, 듣기 어려운 말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물어야 한다.

그게 진짜 성장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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