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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맛없는 게 아니라 다른 거야” —생각의 거리

설렘이 사라진 미국출장

by 영보이 삼

미국에 출장을 왔다.

처음 외국 출장을 나왔을 땐, 긴장도 되고 한편으론 설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영어 표현도 그에 맞춰 달라져야 하는 것 같다.

“고마워”가 “감사합니다”로, 나중엔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표합니다” 같은 표현으로 바뀌는 식이다.

그런데 사실 진짜 어려운 건, 말보다 생각의 차이다. 우리는 뭔가를 표현할 때 유독 극단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회의실에 일찍 들어가면 괜히 노트북을 켜두고 바쁜 척을 한다. 요즘은 그냥 커피 머신을 찾아다니며 커피를 들고 여유롭게 앉아 있는 척을 한다.

얼마 전엔 유럽 동료가 다가와 커피 머신 위치를 물어봐서 알려주며 농담처럼 말했다.

“아마 이 커피, 너희 나라 커피보단 맛없을 거야.”

그러자 그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맛없는 게 아니라… 다른 거야.”

또 회의 중에 우리가 하기엔 좀 부담스러운 일을 부탁받아서, 장난 섞인 말투로

“지난번에도 너랑 전화로 싸우지 않았니? 이건 좀 힘들다”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대답했다.

“싸운 게 아니라 진지하게 얘기한 거였지.”

순간, 좀 멋쩍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는 ‘다른 것’을 자주 ‘불편한 것’이나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조금만 분위기가 진지해져도 “말다툼했다”거나 “감정 상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한동안 나는 극단적인 표현을 '생각이 뚜렷하다', '줏대가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생각의 명확함이라기보단 때때로 편협함이었던 것 같다.

표현이 서로를 존중하고 긍정적으로 다가간다면, 생각과 행동도 점점 그렇게 바뀌지 않을까.

요즘 한국 정치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

광화문에서 서로 다른 깃발을 든 사람들처럼, 나 역시 극단적인 말들 속에 있었던 건 아닐까.

이제는 서로를 조금 더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서로를 좀 더 발전적인 언어로 대했으면 좋겠다.

ChatGPT Image 2025년 5월 3일 오전 08_23_2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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