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는 했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2)

by 이립

팀장님은 주니어보드가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현재까지 운영되어 왔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팀장님은 주니어보드 협의체에 인사 조직의 그림자가 드리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셨고 주니어보드들의 활동들에 우리가 개입해서는 안되며 그들 스스로 성과를 낼 수 있게끔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을 매우 강조하셨다.

내가 주니어보드 업무를 인수하고 있을 당시에는 주니어보드의 파트가 2개로 나뉘었다. 하나는 AI 파트이고 나머지 하나는 조직문화 파트였다. AI파트는 업무 효율화를 위한 기획을 하는 역할이었고 팀장님께서 간사를 맡으셨다. 조직문화 파트는 조직활성화를 위한 기획을 하는 역할이었고 인사운영팀장이 간사를 맡으며 내게 그 역할을 인계하시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모든 주니어보드의 구성원들이 억지로 끌려온 표정과 함께 매우 수동적인 태도로 활동에 임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인사운영팀장님도 그런 주니어보드 구성원들에게 역할과 기한을 부여하며 직접 리드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인사운영팀장님은 내게 '이렇게 끌고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래야 다음 모임 때 결과물이 나온다.'라는 말을 재차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 우리 팀장님은 인사운영팀장의 행동을 지적하지 않으셨다. 그냥 가끔 조직문화 파트에 오시면 그냥 웃으면서 '너무 몰지 마'라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결국 우리 회사 주니어보드도 다른 곳과 비슷하게 끌고 가는 거는 우리 조직에서 해야 되는 게 맞는구나.'라 생각했다.




주니어보드 활동이 끝나고 나서 팀장님은 내게 와 소감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냐라 물으셨다. 나는 앞으로 구성원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역할 분배와 가이드를 제시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팀장님은 처음에 말했듯이 절대로 우리가 개입해서는 안되고 그들이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건 또 어쩌자는 것인지 짜증이 났다. 분명히 인사운영팀장님은 내가 끌고 가야 된다고 했고 우리 팀장님은 그러면 안 된다고 하시면 난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지 머리가 아팠다.




이때부터 나는 주니어보드 운영마저 뭘 해도 욕먹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가 주니어보드에 개입하지 않으면 일의 진도가 나가지 않아 문제가 되어 혼났고 내가 개입하면 개입했기 때문에 혼났다.

한 번은 주니어보드 구성원들이 화상회의를 자발적으로 요청하였고 그들이 토론에 집중할 수 있게끔 내가 회의록을 작성했다. 이후 참여한 인원들에게 공유한 뒤 수정이나 누락된 부분을 다 함께 이야기하여 컨센서스를 맞췄고 향후 일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사건으로 팀장은 크게 분노하셨다. 회의록을 작성한다는 것은 회의 내용을 책임진다는 의미인데 내가 회의록을 작성했기에 주니어보드의 자율성을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중대한 계약의 현장도 아니고 해당 회의 내용이 조직의 책임 추궁의 소재가 되는 위험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그들이 스스로 소집한 회의 내용을 받아 적고 검토를 받은 단순 지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혼나야 됐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시기에 나는 음주는 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말아야 되는 역설적인 존재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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