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플라워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을 사시던 아버지께 항상 말했다. 나는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살아갈거라고. 반복되는 일상에 안주하기보다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고 방황하며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다짐했다. 젊은이의 패기가 가상하다며 아버지는 늘 그런 내게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여전히 스물 그 어딘가 쯤의 젊은이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활발하고 다각화되었다. 한때 유행이며 새로웠던 것들이 금방 일상이 되고, 또 다른 영역이 급부상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세간은 단군 이래 가장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불안의 시대가 왔다고 떠들어댄다. 재빠른 변화의 속도에 발맞추려 모두가 아등바등대고, 나 역시도 어린 아이 시절 떠들어대던 그 포부에 최소한의 책임을 지고자 급류에 휩쓸려 정신없이 첨벙댄다. 물살은 거침이 없다. 쭉쭉 뻗어나가는 물줄기처럼 당당하고 확실하게 한 획을 그어나가던 시절은 물살에 씻겨나간지 오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면에’, ‘하지만’ 과 같이 변화무쌍한 연결어들이 좋았다. 크고 거대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흐름을 미리 보여주기에, 저런 웅장한 단어들처럼 살고 싶었다. 독자의 기대와는 반대되게 흐름에 전환을 주며, 모두를 놀라게 하고 당황케하는 저러한 말 덩어리가 되고 싶었다. 문득, 한 번도 주목해본 적 없는 ‘그리고’ 가 처음으로 눈에 밟힌다. 저와 비슷한 무언가를 줄줄이 꿰며 말씨를 굴려주는 역할을 굳건히 해 낸다. 기대하던 반전의 결과는 없지만, 아직 할 말이 있다며 이어가면서 그 목소리를 끝까지 내어가며 울림을 준다. 색채가 없어보이지만, 화려한 색깔과 변화가 넘쳐나는 흐름 속에서 ‘그리고’ 는 청명한 빛을 낸다. 큰 주목은 받지 못할지라도 그에 굴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 한편, ‘그리고’ 의 뒤에 이어질 말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 어떤 말이 오더라도 지극히 자연스럽다. 어느 정도 뒷말이 예측이 되는 다른 표지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그리고’ 뒤에 무엇이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지극히 단조롭기에, 가장 예측할 수 없는 단어였던 셈이다. 투명하기에 무엇이든지 담아낼 수 있었다.
내 삶의 점들을 이어갈 연결어를 찾아 본다. 소란하고 요동치던 폭풍우같은 점들, 그리고 그 사이를 잇던 수많은 거센 연결사들을 지나쳐옴에 감사하다. 앞으로의 모든 순간들은 ‘그리고’ 로 채워나가겠다. 그 뒤를 알지는 못하지만 잘 꿰어내겠다는 의지와 함께, 어떤 순간이 닥치더라도 그것과 따스하게 포옹하며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결단과 함께, 새로운 문장이 올 날들을 기대하고 있다. 나는 묵묵히 반직선으로 뻗어내어 도착한 항구에서 뱃고동 소리를 듣는다.
아슬아슬한 청춘을 디디고 있는 나,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