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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사

by 상경논총

글쓰기를 모두 끝마치고 내가 써내려간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면, 여기저기 남발된 접속사 ‘그리고’를 마주하곤 한다. 이럴 때면 또 하나의 치부가 들켰다는 사실에 서러움과 짜증 사이 어딘가의 감정을 느낀다. 논리적으로 글을 써내려가지 못해서, 그래서 부연 설명이 계속 요구되어서 ‘그리고’가 자꾸만 호출되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리고’가 꼴보기 싫어 지워버리면 글의 흐름이 이상해지는 것 같고, 그렇다고 ‘그리고’를 ‘또’로 바꿔쓰자니 뭔가 유치해보이고… 내가 좀 논리적인 사람이었으면, 내게 글솜씨가 좀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사실 생각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내 모자란 점을 또 하나 알게 되었다는 점에 기분이 다시 한번 울적해질 뿐이다. ‘그리고’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단어이자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모난 모습이다.


난 어렸을 적, 내가 어떤 어른이 될지가 너무 기대됐다. 왠지 멋있는 사람이 되어있을 거 같았다. 만화영화에서는 모두 영웅들만 등장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맞다, 그땐 몰랐다. 크게 보잘 것 없는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고는 말이다. 어렸을 적 상상하곤 했던 나의 모습과 지금이 너무 달라서일까, 미래는 어느샌가 기대와 설렘이 아닌 두려움과 불안이 되었다. 나의 모난 점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일까, 마음에 안드는 내 모습이 꽤나 많아지게 되었다. “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왜이리 비관적이고 힘이 없니”, “그냥 잊으면 되지 뭘 그걸 계속 생각하고 있니”, “뭘 그리 남들이랑 비교하려하니, 그것도 모잘라서 걔들 눈치를 보려 하다니”.


참, 나도 어른스럽지 못하다. 왜그렇게 잘난 애들만 골라와서 나 자신이랑 비교할까. 왜 유별시리 잘난 애들만 골라와서는, 난 왜 그렇게 될 수 없을까 자책하는지 말이다. 내가 뭘 잘하는지는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으면서, 걔가 잘난 점을 갖지 못했다고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결론내버리는 건지 참. 어느순간, 나의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은 내 스스로가 아닌 외부에서 만들어 낸 그것에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과연 오롯이 나로 존재한 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좀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남에게 안휘둘리면서 당당하게 살아나갈 수는 없는 걸까. 왜 나라는 방에는 다른 사람들만 있고, 정작 내가 앉을 자리는 없냐는 것이다. 내 방에 앉아있는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왜 무작정 데리고 와서는 앉을 자리를 내어준 것인지 묻고 싶은 거다. 정작 그 타인은 현실과 상상, 그리고 불안함 속 등장인물들이 섞이고 섞여 만들어낸 허상일 뿐인데.


아, 설익었을지라도 나도 안다.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남 눈치 안보고, 나 자신으로서 당당하게 존재하기! 근데 그게 쉽나. 나라고 그런 다짐을 안해봤겠는가. 나도 생각을 바꾸려해봤지, 근데 여전히 내가 안멋지게 느껴지더라. 난 가끔 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너도 참 자신감이 없구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봤을 때, 내가 너를 보며 드는 생각을 할까? 그러면 좀 속상할 거 같은데… 도시에서 벗어나야 할까? 도시는 모든 욕망들이 모이는 곳이니 말이다. 이뤄지지 않은 욕망은 쉬이 열등감으로 변하니까 말이다. 그저그런 사람들과 그저그런 삶을 사는 게 나에게는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아아, 모르겠고 그냥 나무같은 사람이나 될까나. 그래도 뭐, 그러려니 한다. 적어도 시원한 커피를 사 마시면서 느끼는 행복은 아직 있으니까. 그럼 됐지. 그것만 지키면 됐지. ‘그리고’ 좀 쓰면 어떻냐, 너는 글 잘쓰면 얼마나 잘쓴다고. 그게 운율로 느껴질지는 모르는 거 잖은가. 부끄러운 말들을 쏟아낸 거 나도 안다. 그런데 어쩔까, 넌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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