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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뉴

글 짓는 원숭이

by 상경논총

이름조차 새로운 ‘뉴’질랜드에서 바리스타가 되었다며, 여름이면 붉게 돋아나던 내 피부의 안부를 물어오는 너의 세심함에, 나는 꽃을 들고 하트를 날리는 이모티콘을 고르고 골라 보내면서도 썩 기쁘지 못했어.

베란다가 딸린 집으로 독립을 했고, 새 룸메가 생겼고, 그리고 내일은 첫 출근을 한다.


네 말대로 12시 기온이 20도가 넘어가면 귀신같이 붉게 돋아나는 내 피부처럼 여전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너처럼 불쑥 밀려왔다 홀연히 떠나는 것들도 있는 게 삶이고, 세상의 이치고, 살아감의 즐거움인데, 그런데도 난 새로운 소식은 썩 반갑지가 않아.


새로운 것들은 그립지가 않아.


너와 함께할 때의 난 입을 떼기만 하면 언제나 스물, 스물다섯, 서른의 날로 날아가곤 했지. 거기에 반짝이는 뭔가 맡겨 놓은 사람처럼.


너는 앉아서 잘도 나를 높은 곳으로 날리고 날렸는데

지나고 보니 너는 바람이었구나

어디로든 불 수 있는 바람이었구나

우습게도 이제 나는 눈앞에 백지를 두기만 하면 언제나 열일곱으로 돌아가곤 해. 거기에 뭐라도 두고 온 사람처럼.


진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열일곱의 나는 앉았다 하면 항상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었잖아. 잃어버린 지갑이 학교로 세 번째 돌아왔을 땐 한국에는 진짜 천사가 있다며 하루 종일 깔깔댔는데, 그때 지갑 말고도 떨어트린 건 우체통에 안 넣어주셨던 게 분명하지.


한때의 우리를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 주어졌던 잠깐의 배역쯤으로 여겨보려고도 했지만

누구에게나 다시 맡고 싶은 찰떡 캐스팅, 인생 캐릭터는 있는 거잖아?

배우들이 종방연을 마치고 맡았던 캐릭터에게 고마웠고 잘 살라며 인스타그램에 남기는 걸 보면

연기를 배워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 되나 싶기도 해.

그리움이 가득 찬 인간들은 ‘그리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나 봐.

지난날을 밀어내고 내어줄 공간이 부족해 차라리 속 좁은 인간이 되고 말아.

항상 가탈을 부리고 쓰으읍 뱀 소리를 내며 새로운 사정은 들은 체도 안 하지.


가탈스러운 인간들을 대변하자면,

그리워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진심으로 아껴봤다는 말이니까

그리고를 거부하는 고집쟁이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어.

고집쟁이야말로 진짜배기 낭만 컬렉터라고


그래도,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엔 꼭 전처럼 프리지아를 사갈게

지금은 그때와 달라서 비싼 망고 튤립도 살 수 있지만,

그래도 프리지아를 사갈게


Y,

너의 시작을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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