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수호대
교정에 벙글어가는 목련과 진달래를 보며 올해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음을 느낍니다. 이 책이 출간될 뜨거운 여름이면 연초록 담쟁이들이 건물에 살랑살랑 옷을 입히고 있겠지요.
이처럼 오랜만에 백양로의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온 오월이지만, 제 마음 속 한 켠엔 지워지지 않는 아쉬움만 커지고 있습니다. 아마 상경논총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제 스스로가 느끼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지난 한 해는 유난히 정신이 없었습니다. 복학생의 열정으로 잔뜩 짊어진 과제들은 학기가 지나갈수록 흘러내리기만 했고, 할 것이 산더미인데도 취미를 갖겠다고 마음에도 없던 도전에 나서기나 했습니다. 가을이 지나면서는 드디어 학교에 학생들이 돌아왔습니다. 캠퍼스엔 설렘과 낭만이 흘러 넘쳤고, 저는 그 사이 우연히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일 년 간 우리 모두는 새로운 시작에 빠져들었고, 마침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상경논총과 함께한 한 해는 그렇게도 정신이 없었지만, 제 대학 생활에서는 가장 반짝이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일 년 하고도 반 만에 누리는 자유는 그 무엇보다 달콤했고, 처음으로 시작한 동아리 활동은 매 순간이 새로웠고, 제 글을 써 내려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임을 실감했습니다. 그 놀라운 시간들을 함께 한 반짝이는 얼굴들은 여전히 제 기억 속에 있습니다. 함께 대우관을 올라가며 학생회관의 동아리를 부러워하던, 뒤늦게 일어나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 채 약속 장소로 달려온 저를 무심하게 감싸주던, 숲 속 작은 펜션에서 밤을 지새우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해질녘 회의를 마치고 함께 백양로를 걷던 편집부원들을.
그리고 그 시간을 감싸던 아름다운 배경도 기억합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학생회관을, 가을이면 백양로를 노랗게 물들이던 은행나무를, ‘가장 연한 초록에서 가장 짙은 초록에 이르기까지,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는 <신록예찬>의 문장을 머금게 한 청송대를, 항상 투덜대면서도 사실 어느 곳보다 아늑했던 대우관 구석의 작고 어두운 동아리방을.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는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봐 주시던 얼굴들도 기억합니다. 동아리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냐고 너스레를 떠시면서도, 조용히 어깨를 토닥여 주시던 선배님들, 새로운 책이 나올 때 마다 항상 먼저 찾아 준 독자님의 웃음 가득한 눈빛과 잘 읽었다는 인사들을.
늘 어렵게만 느껴지던 글이, 나갈 때를 앞두어서야 이렇게 쉽게 써지는 모습을 보니 제 아쉬움이 많이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상경논총은 첫걸음을 내딛는 제 신발끈을 묶어주었습니다. 이번 학기가 지나고 나면 당분간 상경논총은 제 대학 생활의 ‘그리고’ 중 하나로 남겠지만, 그날의 시간은 언제나 마음 한 켠에서 아스라이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항상 다시 함께할 그날을 그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