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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해돋이(1872)

모네

by 상경논총

갤러리를 정리하다 수년 전 그린 그림을 발견했다. 분홍빛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고 검은 산이 반절 정도 덮고 있는 그림인데, 구름을 표현하는 게 어려워 꽤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손재주가 좋지 않은 나는 그림을 그릴 때 항상 사진을 옆에 두고 그대로 그리려고 노력한다. 그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큰 사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덮어버리고 대충 마무리를 짓는다. 그날 그린 그림도 사진에서는 구름의 아래에 반짝거리는 바다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구름을 그리다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그림의 절반은 까만 산으로 덮어버렸다.


그림을 완성했을 당시에는 구름을 망치고 바다를 표현하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지금 보니 산으로 반절 덮인 이 그림도 퍽 운치 있고 아름다워 보인다.


인생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실패의 실패를 거듭하고 황급히 달려가다 보면, 내가 그려온 찬란한 인생의 도면은 온데간데없고, 덕지덕지 덧그려진 그림만이 남아있다.


남들이 남긴 아름다운 사진을 보고 시작했을 때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완성작도 사진과 똑 닮을 것이라 생각했다. 힘들어도 사진을 떠올리며 꾸역꾸역 이겨냈는데, 지금은 망가진 부분을 억센 붓으로 여러 겹 덧바르고 있다.


마무리는 지어야지, 마무리는 지어야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려간다. 언젠가는 이 그림도 아름다워 보이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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