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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나랏돈 쓰는 데 규칙이 없다고?

수습부원 김재식

by 상경논총

또 한 번, 넘지 못했다. 당초 2022년 연내 법제화를 강력히 주장했던 정부의 ‘재정 준칙’ 은 국회의 문턱을 7개월째 넘지 못하고 있다. ‘재정 준칙(Fiscal Rules)’ 은 정부가 예산을 편성할 때 일정한 제한을 두는 규칙이다. 가정에서 가계부를 쓰듯, 정부가 지출을 통제하고 미래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미리 세워 두는 기준이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리스크로 인해 확대재정을 펼쳐야 하는 상황적 특수성에 얽혀, 작년도 재정 준칙 법안은 시기상조라는 분위기 하에 통과되지 못하고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국은 재정 준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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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을 사용하는 객관적인 근거가 전무한 상황에서, 경기 부양의 명목으로 유례없는 확대 재정정책을 펼친 결과물이 눈덩이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올 5월 발표한 ‘월간 재정동향’ 자료에 따르면, 관리재정수지는 2022년 1분기 적자규모 45조에서 5000억원에서 2023년 1분기 54조로 악화되었다. 이는 경기 둔화로 인한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세수가 줄어듦으로 인한 여파로 보인다. 특히 이 중 법인세의 감소는 수출 부진 등으로 인한 기업의 실적 악화가 지표로도 여실히 드러남을 시사한다. 이러한 ‘54조 적자’ 수치는 정부가 올해 초 예산을 편성하며 계획한 적자규모 58조 2000억원의 90%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당초 정부가 예상한 1년 적자폭의 90%가 이미 1분기에 달성된 셈이다. 이 사실은 괄목할 만한데, 정부 당국 자체도 이러한 경제 위기와 불확실성에 대한 통제와 예상이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결국 상황을 그저 관망하며 시시각각 가변하는 재정 정책은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이는 더 큰 재정 건전성 악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방증한다. 선제적이고 예방적인 재정 준칙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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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근의 관리재정수지 자료는 코로나19라는 특수성에 얽혀 있어 적자 규모가 증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사실이나, 코로나19 탓만 하기엔 국가 채무 비율은 이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2011년 30.3% 에서 2018년 35.9%까지 코로나19가 발발되기 전에도 소폭 상승 추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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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코로나19와 같은 국제적 쇼크에서 재정 준칙이 없는 한국은 타 국가들에 비해 부채 비율 상승에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 IMF는 한국의 국가 채무 비율 상승폭이 OECD 국가들 중 1위 (18.8%p) 일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의 국가채무비율이 감소세에 있다는 흐름에도 대치된다. 즉, 재정 준칙이 없는 국가는 국제적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물론 극심한 위기에서는 주요 국가들도 재정 준칙을 벗어던지고 상황 수습에 나서지만, 이전의 준칙으로 빠르게 돌아오려는 항상성이 발휘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위기 대처에 기민해질 수 있다. 어려운 국제 정세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한국은 저출산 및 고령화 속도가 OECD 국가들 중 1위이다. 저성장과 세입 기반이 약화되는 새로운 시대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연금 등의 복지 지출 증가 및 미래 세대의 빚 부담 등 유례없는 제2의 쇼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예견되는 불확실성이 만연해지는 이 시점에서, 위기 대응 매뉴얼로서의 재정 준칙은은 필수불가결하다.


실제로 이러한 재정 준칙은 각 국가별로 그 필요성을 절감하여,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를 제외한 모든 OECD 국가들에서 각각 다른 형태이지만 법제화 되어있다. 따라서 본 글은 1) 재정 준칙의 종류를 타 국가들의 용례들과 엮어 케이스 분석을 진행하고, 2) 현재 잠정 논의중인 한국형 재정 준칙이 어떻게 수정되어야 하는지를 1) 의 분석에서 착안한 키워드인 ‘구체성’, ‘직접성’ ,‘제재성’, ‘예외성’에 근거하여 제언하고자 한다.


재정 준칙은 시행 국가 별로 그 양상이 다르다. 각 국가가 목표하는 바에 따라서, 지출 준칙, 재정수지준칙, 채무준칙, 세입 준칙으로 나뉜다. 본 준칙의 형태들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들을 혼용하고 독창적인 잣대를 추가하여 준칙을 확장시킨다.


먼저, 지출 준칙은 정부 지출액 자체에 직접적인 제한을 거는 방식이다. 액수 자체에 대한 제한을 가하다보니 매우 구체적이고 강력한 방안이다. 그러나 상당히 경직적인 방식이기에 재정활동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투자가 위축되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스웨덴과 미국이 지출 준칙을 시행 중이다. 스웨덴의 지출 준칙은 27개의 재정 지출 분야를 세분화하고, 채무에 대한 이자 지출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 사용 가능 액수 제한을 법률로서 둔다. 즉, 해당 준칙에 대한 예외를 봉쇄하여 준칙이 정확히 지켜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 결과, 준칙이 시행된 1990년대 후반부터 재정 건전성이 매우 좋아졌다. 재정 수지가 1995년에 7% 적자에서 2019년 0.5%까지 회복되며 준칙의 실효성을 입증했다. 이번 코로나 상황에서도 확대 재정을 펼치긴 했으나, 기존부터 관리한 재정 건전성 덕에 예상 부채비율이 2026년 34.6%로, 코로나 이전인 34.9%에 비해서도 낮아질 전망이다. 준칙을 활용한 재정 상태의 탄탄함이 위기 극복을 빠르게 한 셈이다.


그렇다고 지출 준칙이 항상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지출 준칙 활용하는 미국의 경우, 그 성과가 초반에는 괄목할만 했으나, 점점 미미해지고 있다. 미국의 지출 준칙인 ‘페이고(pay-as-you-go)’ 란 의무지출의 증가와 관련된 입법을 할 때에는 그에 대응되는 다른 지출의 감소를 통해 영향성을 상쇄시켜야 한다는 준칙이다. 이를 통해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는 2000년 2,362억 달러에서 2002년 1,578억 달러로 급감했고, 페이고 정책 만료 후에 다시 적자가 증가해 2010년 재시행까지 하는 등 매우 잘 짜여진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스웨덴과 달리 예외 상황을 많이 두며 그 실효성이 의심스러워지고 있다. 우선 페이고 정책은 법률로서 규정되어 있으나, 이를 회피하기 위한 특별법도 제정되어 있다. 또한, 지출액을 통제하려고는 하나 ‘상쇄’ 개념을 활용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액수로 환원하기보다는 그에 상응하는 정책을 대안으로 두어 그 구체성이 스웨덴에 비해 떨어진다. 예외가 널리 인정되다 보니 제재도 미흡해질 우려가 크다. 기축 통화국이자 패권국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타 국가들과의 단적인 비교가 어렵지만, 미국은 지출 준칙에 예외 사항을 많이 두어 코로나19 상황에도 다른 나라의 예외보다 더 많은 재정을 소진했고, GDP 대비 정부부채는 2011년 99.4%에서 2020년 134%까지 지속적으로 상승 중이다.


재정수지 준칙은 재정 적자 폭의 최대치를 미리 규정하고 이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준칙이다. 이는 재정 적자라는 재정 건전성에 가장 직접적인 요인에 대한 규제라는 점에서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재정 적자는 경기 상황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는 지표이므로, 경기 상황을 통제하고 억누르는 기능을 하지 못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이 재정수지 준칙을 활용하고 있다. (후술할 채무 준칙도 함께 혼용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정부 차입을 공공투자 지출을 위한 목적으로만 한정하여, 공공부문의 예산 균형을 맞추고 재정 적자를 줄이고자 했다. 가장 최근 보수당 총선거를 통해 확정된 재정수지 준칙은 크게 세 가지인데, 1) 경상 예산은 5년 단위 세 번째 연도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2) 공공부문의 순투자가 5개년도 상에서 GDP의 3%를 초과할 수 없고, 3) 공공부채에 대한 이자 지불금이 정부 수입의 6%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 구체적 준칙이다. 물론, 법률로 지정된 해당 준칙들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바로 예외 조항이 성립하여 잠시 중단되었지만, 2021년 10월 재정 준칙을 타 국가들에 비해 매우 신속하게 복귀시켰다. 하지만, 이렇게 잘 짜여진 정책을 시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국은 현재 GDP 대비 부채비율이 100%를 넘으며, 준칙의 적용에도 불구하고 재정 건전성에 의심을 받는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준칙 예외가 적용되었을 때 50년 만의 최대 규모인 연간 450억파운드(약 70조원) 감세 및 가계 와 기업에 전기, 가스요금 600억파운드(약 92조원)을 지원하는 등 예외 상황을 즐겼다. 이를 통해, 예외 상황에서도 준칙에 지나치게 반하는 확대 재정 정책들이 준칙의 장점들을 무력하게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외 상황에 대한 지나친 관대함이 필연적으로 재정 건전성 악화에 직접적으로 기인함을 시사한다.


채무 준칙은 국가 채무의 상한선을 GDP 대비 일정 비율로 설정하는 방식이다. 앞서 언급한 재정수지 준칙과 마찬가지로, ‘채무’ 라는 재정 건전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요인에 대한 통제를 시도하기 때문에 성과 측면에서 매우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채무와 이를 탕감하기 위한 예산 정책 간에는 정책적 시차가 있기 때문에, 채무 통제가 즉각적인 재정 건전성 완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한계가가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이 채무 준칙을 시행 중에 있다. (독일은 재정 수지 준칙과채무 정책을 혼용하여 사용한다.) 독일의 채무 준칙은 상당히 구체적인데, 신규 채무가 GDP대비 0.35% 이내로 조절되어야 한다고 헌법에 명시했다. 이러한 ‘채무제한’ 은 약간의 예외 규정을 두었으나, 그 예외로 인해 발생하는 신규 채무에 대한 상환 규정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두었다. 즉, 준칙의 예외로 인해 벌어질 손실을 복구하기 위한 노력을 함으로써 현실과의 괴리를 좁혔다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독일의 채무 준칙은 효과를 거두었다. 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은 코로나 직전까지 2018년 61.6%, 2019년 59.2% 로 하향 추세였다. 한편, 코로나 대응을 위해 준칙에서 이탈하여 확대 재정 투자를 감행했으나, 이 때 채무 상환 계획도 동시에 의결하여 이번에 발생한 초과 차입금을 2026년부터 시작해 2042년까지 매년 분할 상환하겠다는 내용 역시 통과시켰다. 이러한 책임 있는 태도는 준칙이 있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었고, 독일의 재정 건전성 상황이 향후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만연한 이유로도 꼽힌다.


마지막으로 세입준칙은 세입의 한도 및 최저점을 정하고, 충분한 세금을 확보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준칙이다. 독특하게도 지출 부분과 채무 자체를 건드리지 않고, 세수만으로 경기 상황을 조절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세금을 걷는 것은 경기 상황에 의해 큰 영향을 받으므로, 경기 변동을 조절하는 힘이 적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는 2006년에 중앙정부와 사회보장기금이 기존에 예상했던 세입보다 많이 세금을 걷을 경우, 이를 분산시키고 억지하여 기존 기준치로 만드는 전형적인 세입 준칙을 시행하였다. 이후 2011년에는 다년도 재정기획법에서는 구체적인 세액을 지정하고 (2011년까지 10억유로, 2014년까지 추가 30억유로) 최소한의 재정 목표치를 달성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들이 세입 준칙을 많이 철회하고 가장 제한적으로 도입하는데, 그 이유는 재정 지속 가능성을 세금이라는 변수만으로 조절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재정 준칙의 종류들과 타 국가 선례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착안할 수 있었다. 먼저, 재정 준칙이 촘촘하지 않고 예외사항을 지나치게 인정하는 경우 그 성과를 얻기가 어렵다. 앞서 스웨덴의 경우 가장 엄격한 재정 정책을 실시하였고, 예외 사례를 거의 없게 하여 준칙이 잘 적용되도록 이끌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 비슷한 방식의 재정 준책이었으나 타 특별법이나 예외를 많이 설정하여 실제적으로 준칙이 효력이 없게 될 여지를 많이 두었다. 즉, 엄격한 재정 준칙이 재정 건전성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구체적인 수치와 양적 목표가 있는 재정 준칙이 조금 더 효과성이 높았다. 미국의 경우 구체적인 수치보다는 서로 상쇄하는 정책을 통해 균형을 맞추어 나가는 다소 모호한 정책을 내 놓았다. 이러한 계량화되지 않은 정책들은 다양한 불확실성에 노출되기 쉬우므로 정책이 실효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독일과 스웨덴처럼 구체적인 수치를 법률로서 명시한 국가들의 부채비율이 그렇지 않은 국가들보다 좋은 편에 속했다. 마지막으로, 재정 건전성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인 ‘채무’나 ‘지출’ 등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정책들이 효과가 좋다. 세입 준칙과 같이 경기 상황을 통제하기보다는 경기 상황에 의해 영향을 받는 요인을 활용하는 정책은 그 효과성이 떨어졌다. 이러한 시사점을 바탕으로 현재 논의가 중단된 채로 놓인 ‘한국형 재정준칙’의 실효성에 대해 4가지 키워드를 착안하여 제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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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최종 논의된 한국형 재정준칙은 다음과 같다. 2022년 7월 7일 윤석열 정부가 ‘2022 국가재정전략회의’ 에서 언급한 내용인데, 1) 재정 적자를 관리재정수지 -3% 이내로 통제하고, 2) 만일 국가 채무가 60%를 초과한다면 관리재정수지 목표가 더 엄격해진 -2%로 격상된다. 또한, 준칙의 법적 근거는 법률로서 제한한다. 이러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앞선 선례에서 착안한 4가지 키워드 ‘구체성’, ‘직접성’, ‘제재성’, ‘예외성’ 이라는 기준에 근거하여 평가해보고자 한다.


먼저 ‘구체성’ 측면에서는 매우 바람직한 입안이다. 우선 ‘3%’ 라는 구체적인 수치로 일반적인 상황을 상정하였다. 또한, 부채 비율이라는 구체적 조건 하에 ‘2%’ 라는 더 촘촘한 억제를 해낸다는 점에서, 재정 준칙의 엄밀함과 필요성에 대해 심사숙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리재정수지 –3% 이내’ 라는 설정값도 합리적이다. -3% 는 재정이 제 역할을 하면서도 긴장감을 갖고 지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하는 수준으로, 2019년 코로나 이전으로의 복귀를 최종적으로 지향함을 피력한다. 만약 명목 GDP 성장률이 4~5%를 유지하면서 3%보다 낮은 수준의 적자를 내면 국가채무가 크게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고려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이렇듯, 정부는 충분한 숙고의 과정을 거쳐 최대한 그간의 경험과 통계성에 기반하여 구체적이고 참신하게 한국에 특화된 재정 준칙을 설정하려 노력했으므로, ‘구체성’ 측면에서 좋은 평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직접성’ 측면에서 역시 합리적이었다. 타 국가들의 사례를 보았을 때, 채무 지표나 재정 수지 부분을 직접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세금 등의 간접적 요인을 통해 조절하는 것보다 더 재정 건전성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보았다. 이러한 견지에서,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와 ‘채무 비율’ 이라는 직접적 조건을 내걸며 건전성 확보에 박차를 가했다. 따라서, ‘직접성’이 강한 변인들을 통제하려 함으로서 정책이 실효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제재성’ 측면에서, 한국형 재정준칙은 엄격한 제재책이 없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만일 이 준칙을 어겼을 경우 시행되는 후속적 페널티가 없다. 언제든지 타 법률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그 제재성이 흔들릴 수 있고, 이를 보완할 만한 별도의 객관적 감시기관이 부재한 것도 제재성 측면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이유이다. 이를테면, 스웨덴의 경우 복수 기관의 감시망을 확보하여 준칙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담보한다. ‘스웨덴 재정정책위원회’ 라는 별도의 산하 기구에 6인의 위원들이 현 상황과 재정 준칙의 적합성에 대한 의견을 낸다. 또한, 재정 추계 검증의 목적으로 국가 채무청, 재무관리청, 전국경제연구협회 등 상호 간의 견제를 통해 준칙 자체의 신뢰성과 합리성을 최우선적으로 담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듯, 한국형 재정준칙은 이를 위반하고 규칙에서 어긋났을 때의 후속적 조치와 제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준칙 이행 과정에서 상호 간의 견제를 위한 제재 방안도 더 고려해야 한다.


한편, ‘예외성’ 측면에서는 다른 국가들과 큰 차이가 없어 중립적이다. 현 준칙 예상안에서는 추경편성요건과 동일하게 재정 준칙의 예외 조건에 1) 전쟁, 대규모 재난, 2)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남북 관계의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할 때 라는 예외가 인정된다. 즉, 긴급 상황에서는 준칙에 예외를 둔다는 항목이다. 그러나, ‘중대한’ 변화 및 ‘대량’ 실업과 같은 표현들 자체의 애매모호성이 결국 후의 재정 정책 입안 시 정치 논리에 의해 악용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따라서, 조금 더 구체적인 경기 지표들을 기준 삼아 예외 조항을 재구성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러한 한계점이 포착되기는 하나, 타 국가들의 실례를 분석하였을 때 마찬가지로 이러한 모호한 개념을 활용하여 예외 사항을 서술하는 국가들이 일반적이므로로, 중립 의견을 내었다.


재정 준칙은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강화되는 최근 92개국이 도입할 만큼 보편적인 관행이 되었다. 이런 흐름 안에 한국은 아직 재정 준칙이 성립되지 않았고, 여야 간의 타당성 논박으로 인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국제적인 흐름이라는 이유로 모두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재정 준칙이 절대적으로 경제 상황을 좋게 해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실제로 본 글에서 다루었던 미국의 페이고, 영국의 준칙도 그 세부적 내용 결함 때문에 주요 경제 지표들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재정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에 이러한 준칙들로 인해 재정의 자율성과 투자가 저해된다는 우려도 많다. 그러나, 재정 역량에 대한 기준과 잣대를 설정하는 것은 마치 가계에서 가계부를 쓰는 것과 같이 실제적이고 필수적인 일이다. 게다가, 2022년 재정전략회의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국가채무가 50% 중반 수준에 이르렀고 후속적인 저성장과 고령화, 저출산 등의 제반 사회 문제로 인해 지속적으로 채무 수준이 상승할 것으로 사료된다. 이 때에 객관적이고 구속력 있는 준칙 없이 이를 해결하는 것은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채색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리스크는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나타날 것이고, 장기적이고 급작스러운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국가 존재론적 문제를 단순히 몇몇 국회의원들의 의견과 정치적 이해관계 등에 맡길 수는 없다. 그저 한 해 한 해 추경을 통해 급한 불을 끄는 식의 주먹구구식 재정 운영이 아닌, 중장기적이고 거시적인 흐름을 통제하는 넓은 시야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한국형 재정 준칙은 ‘제재성’ 과 ‘예외성’ 측면에서는 다소 부족함이 있으나 개선 가능하고, 몇 번의 개정을 통해 그 ‘구체성’ 과 ‘직접성’ 이 어느 정도 확보된 형태이다. 준칙의 기준을 시행하지 못했을 때의 제재 기능을 강화하여 그 엄격함을 높이고 실효성을 제고해야 한다. 또한, 준칙이 잘 시행되도록 제재하기 위해서 객관적인 독립체를 설치하고, 스웨덴의 모델과 같이 상호 견제하고 통제가 잘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정적 제재성을 확보해야 한다. 더불어, 국가적 예외 상황일지라도 아예 준칙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해당 상황을 복구하기 위한 대비책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등의 예방책이 법제화 되어야 한다. 이외에도, 인정되는 예외사항에 좀 더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지표를 넣어 설립하는 것이 그 모호성을 극복하고 효과성을 높이는 바람직한 방향성이다. 이러한 개선까지 동반된다면, 한국형 재정 준칙은 늦게 시작했지만, 가장 빠르게 나라살림에 보탬이 될 것이다. 재정 준칙은 정치적 문제가 아닌, 나라의 경제 살림을 효율적이고 엄밀하게 관리하기 위한 경제적, 실존적 문제이며 불확실성의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한국형 재정 준칙은 절실히 필요하다.




참고자료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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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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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및 도표
[그림 1] 관리재정수지 추이 - 기획재정부
[그림 2]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 국가지표체계

[그림 3] IMF 국가 채무비율 전망 - IMF

[그림 4] 재정준칙 -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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