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부원 류정민
난방비 폭탄에 눈물짓는 서민들
매서운 한파가 들이닥치던 작년 겨울, 안 그래도 추운 공기를 더욱 싸늘하게 만든 것은 바로 난방비 폭탄이었다. 전년도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오른 난방요금에 자영업자와 서민 가계는 울상을 지었고, 뉴스에서는 연일 난방비 인상에 대한 보도를 내보냈다. '난방비 절약 텐트'라고 불리는 실내용 텐트는 1년 전보다 판매량이 2~3배 증가했고, 음식점은 조리용 불까지 낮추며 난방비 절감을 위해 애썼다. 사우나를 운영하는 이동옥 씨는 지난겨울 TV조선을 통해 어려움을 호소한 바 있다. 2022년 12월에는 난방비가 300만 원가량 나왔는데, 다음 달인 1월에는 850만 원으로 2배 이상 나와 감당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업소 특성상 난방을 줄일 수도 없어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이처럼 전기·가스·수도 소비자물가는 올해 2월에 전년 동월 대비 28.4%가 올라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중 전기료가 29.5%, 도시가스료가 36.2%, 지역 난방비가 34.0%씩 올랐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혹독한 겨울을 나도록 한 난방비 폭탄은 어디서부터, 왜 시작된 걸까? 본 글에서는 난방비 폭탄의 원인을 국내외로 톺아보고, 이후 이어질 냉방비 폭탄의 가능성과 가능한 해결 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난방비, 왜 올랐는데?
① 러우전쟁과 LNG
도시가스요금 상승의 주범으로는 단연 러-우 전쟁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그간 눈엣가시처럼 여겨오던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러우전쟁이 발발했고,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공급이 끊겼다. 이에 세계적으로 가스값이 폭등했는데, 구체적으로는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입 가격이 급등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급 중단과 LNG 가격 폭등을 이해하려면 우선 도시가스의 종류를 이해해야 한다. 천연가스는 본래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 화석 연료인데, 이를 액체로 바꿔 운송하기 쉽게 만든 것이 바로 액화천연가스(Liquefied Natural Gas), 즉 LNG이다. 이는 러우전쟁 이전까지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만 사용하던 에너지원이었다. 반면 배관천연가스(Pipe-line Natural Gas), 즉 PNG는 가스를 액체로 바꾸지 않고 기체 상태 그대로 가스관을 통해 이동시키는 방식을 말한다. PNG는 러시아에서 주로 공급해 왔으며, 별도의 공정을 거치지 않아 저렴한 수송 원가를 갖고 있어 유럽 등의 국가에서 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러우전쟁으로 인해 PNG의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유럽은 이내 미국에서 공급되는 LNG를 대신 수입하기 시작했다. 한국 등 몇몇 나라만 사용하던 LNG를 유럽이 수입하기 시작하자 그 가격이 치솟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액화천연가스 평균 가격은 열량단위(MMBtu)당 34.24달러로 전년도인 2021년(15.04달러)보다 128%가 올랐다. 2020년과 비교하면 무려 약 3.5배가 상승했다.
② 지나친 화석연료 의존도
이번 난방비 폭탄 사태의 보다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어보자면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 구조를 들 수 있다. 2020년 '에너지총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최종에너지 소비는 석유(51.5%), 전력(20.6%), 석탄(13.2%), 천연가스(11.4%) 순으로 화석연료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최종에너지 소비 비중의 약 20%를 차지하는 전력마저도 석탄과 천연가스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비중이 60%가 넘는다. 즉,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는 모두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그렇기에 국제 화석연료 가격이 변동할 때 함께 불안정해지는 것이 필연적인 것이다. 결국 화석연료 의존도만 낮았어도 에너지요금 인상 폭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문제다.
우려스러운 점은 러우전쟁이 끝나더라도 화석연료의 국제 가격이 향후 안정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전 세계는 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22년 12월 고탄소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도입되었고, 주요국에서 모두 탄소세 도입이 진행되었거나 준비되고 있다. 이러한 탄소 배출량 관련 정책들은 화석 연료 가격을 필연적으로 올릴 수밖에 없다. 화석 연료 가격이 올라간다면, 우리나라의 공공요금은 또다시 상승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기업은 적자
그러나 서민 가계에 막대한 부담을 준 것이 무색하게도 막상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의 에너지 기업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23년 5월 기준 한전의 누적 적자는 약 45조 원에 달하며, 가스공사의 역시 11조 6천억 원에 달하는 미수금을 가지고 있다.
에너지 요금은 상승하는데 이러한 요금을 걷는 기업은 파산 직전이라니,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답은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을 항상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닌 우리의 에너지 가격 결정 시스템에 있다. 우선, 도시가스의 경우 가스공사가 국제 에너지 가격과 환율 등을 고려해 요금 조정안을 정부에 제출한다. 정부는 이를 심의하는데,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이를 유보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즉,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해도 가스요금은 인상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러우전쟁으로 인해 상승한 수입 LNG 가격에도 가스요금을 따라서 인상하지 못한 결과, 가스공사는 막대한 미수금을 갖게 되었다. 한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기요금 역시 한전이 초안을 산정하여 산업부에게 인가를 받는다. 이 역시 국제 가격이 상승해도 요금을 인상하지 못할 수 있고, 이윤을 보장받지 못한 결과 한전은 영업 적자와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국제 에너지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국내 에너지 가격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조금씩만 올린 결과, 국민 원성은 원성대로, 적자는 적자대로 떠안게 된 것이 한전과 가스공사의 현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전기요금 및 가스요금을 조금씩 올려보려는 추세이지만, 앞서 살펴봤던 사우나 운영업자의 경우와 같이, 물가 상승과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하면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기요금의 경우 지난 1분기 13.1원을 인상했고, 2분기의 경우 물가 상승을 우려해 조정을 미뤄오다가 지난 5월 15일 소폭 인상을 결정했다. 가스요금 역시 난방비 폭탄으로 인한 여론을 우려해 요금을 동결해 왔다가, 2분기에 들어서야 인상을 결정했다. 이에 4인 가구는 앞으로 월 3천 원가량의 추가 전기요금과 월 4천400원가량의 추가 가스요금을 부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취약계층의 가계 부담을 우려해 다양한 대책을 함께 내놓은 상태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에너지 취약계층의 경우, 평균 사용량까지는 요금 인상분을 1년 동안 유예 적용한다. 또 기존에는 주택용에만 제한적으로 운영하던 전기요금 분할 납부제도를 소상공인과 뿌리 기업에 확대해 다가오는 여름철 냉방 요금 부담을 분산시킬 수 있게 지원할 예정이다. 농사용 전기요금은 3년에 걸쳐 1/3씩 분산 반영해 단기간 요금 부담이 급격하게 커지지 않도록 했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일상 경비를 절감하고 자본 매각, 직원 임금 인상분 반납 등을 통해 적자를 줄여보겠다는 자구책 또한 내놓았다.
다가오는 여름, 냉방비는?
다가오는 여름, 냉방비 걱정도 만만치 않다. 예년보다 빨리 개화한 벚꽃이 올해 여름도 무지하게 더울 것이라는 신호탄을 날렸고, 높아지는 전기요금에 서민들의 한숨과 걱정은 늘어만 간다. 설상가상으로 5월 16일부터는 전국 대부분 지역의 한낮 기온이 30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한여름 날씨를 보이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5월 12일 ‘에너지 전쟁, 앞으로 3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서 “올 7월 예정된 냉방비 폭탄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난방비는 여러 가지 대체 수단이 있지만 냉방비는 오로지 전력에만 기대야 하는 회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며,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국민들의 경각심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지난해 에너지위기 상황에서 유럽은 야간에 불필요한 조명을 모두 껐지만 한국은 크리스마스에 엄청난 트리 조명을 밝혔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3%에 해당하는 한국에서 보여준 아픈 기억”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러시아가 떨어뜨린 에너지 위기라는 폭탄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는 가운데, 적절한 에너지 요금 인상 폭 결정과 화석연료 의존도 감소, 고효율 가전 사용 권장 캠페인, 에너지 절약에 대한 경각심 제고 등 각고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참고자료
신문기사
권애리, “전기-가스요금, 이대로도 부담 커지는데...오를까 안 오를까”, SBS, 2023.04.06.
안윤경, ""경기 회복 기대했더니 '가스비 폭탄'"... 자영업자들 '울상'", TV조선, 2023.01.27.
기민도, “12월분 난방비, 예상보다 뜨거운 이유…더 오를 수 있다 [뉴스AS]”, 한겨레, 2023.01.25.
권우현, “난방비 폭탄? 화석연료의 진짜 가격을 묻는다”, 프레시안, 2023.04.01.
양일혁, “전기·가스요금 5.3% 인상...내일부터 적용”, YTN, 2023.05.15
김동욱, "허리띠 졸라맨 한전·가스公, 배경엔 요금 인상 미룬 정부", 머니S, 2023.05.13.
이가람, 장윤서, ""덥죠, 저희도 알지만…" 냉방비 폭탄에 올여름은 찜통학교?", 중앙일보, 2023.05.19.
윤대원, "올여름 전기요금 ‘2배’ 냉방비 폭탄 온다", 전기신문, 2023.04.12.
그림 및 도표
[그림1] 원형민, "[그래픽] 전기·가스·수도 소비자물가 추이", 연합뉴스, 2023.03.06.
[그림2] 한국가스공사, "LNG, PNG, LPG, CNG는 뭐가 다른걸까? [한국가스공사X사물궁이]", 2020.01.22.
[그림3]권애리, “러-우 전쟁 1년, 쪼개진 세계…그 사이 '새우등' 한국”, SBS, 2023.02.24.
[그림4] 산업통상자원부, "산업부,‘20년 실시한 에너지총조사 결과 발표", 2022.03.18.
[그림5] 김민지,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일제히 5.3% 인상…내일부터 적용(종합)", 연합뉴스, 2023.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