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3#30
타이베이의 긴 겨울 동안 치열하게 고민했었다. 한국 돌아갈까 아니면 여기서 360일 꽉 채울까. 물론 대만 생활 자체는 좋았다. 산이며 바다며 돌아다니며 맛있는 대만 음식 먹고 자유를 만끽하는 삶.
그러나 해가 바뀌고 한 살 더 먹으니 조급함이 찾아왔다. 여기서 중국어 배우는 것도 아니고 혼자 여행 다니면서 돈만 축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국 가서 돈을 벌든 취준을 하든 미래를 준비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아무리 일 년짜리 워홀이라지만 여기서 계속 놀고 있으니 눈치가 보였다. 역시 나이와 생각은 같이 늘어나는, 정비례 관계였다.
겨울비에 축축해진 신발을 신고 타이베이를 걸으며 끝없이 고민한 끝에 결정했다. ‘대만이 쫓아내기 전까지 최대한 뻐팅기자!’. 미래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고 돌려봐도 이대로 돌아간다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2월에 돌아가나 4월에 귀국하나 똑같았다. 내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은.
대신 타이베이를 떠나기로 했다. 반년 동안 열심히 워킹(working) 했으니 남은 두 달은 대만을 누비며 홀리데이를 즐기기로 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한동안 마지막일지 모를 이 휴가를.
얼른 탈출하고 싶은 타이베이지만 떠나기 아쉬운 이유가 딱 하나 있었다.
“사장님, 진짜 그리울 거예요. 이 육개장...”
알바 마지막날. 이날 따라 더 감칠맛 나는 육개장을 먹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슬퍼하는 내 말에 사장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건강하게 여행 잘하고 돌아와서 또 먹으라고. 물론이죠, 사장님!
사실 알바가 끝난다는 것 자체가 섭섭했다. 가끔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하고 현타 올 때도 있었지만, 나머지 99.9%의 날들은 분명 좋았다. 많진 않은 월급이었지만 방세 걱정 없이 살았고, 육개장 덕분에 ‘한국 가고 싶어’ 병도 이겨냈고, 두 사장님과 한국어로 수다 떨며 즐겁게 일했다. 그리고 허광한도 만났고!
평소처럼 홀 바닥 청소 다 끝내고 이제 퇴근할 시간. 눈물 나려는 걸 참으며 두 사장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두 달 뒤에 다시 올게요!” 울지는 않았다. 알바는 끝이지만 우리에겐 다음이 있으니까.
걱정과 달리 마지막 퇴근길은 하나도 쓸쓸하지 않았다. 내 후임으로 들어온 동생과 퇴근 후 수다 타임을 가진 덕분이었다. 후임 동생은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이었는데, 왜 이제야 만났는지 아쉬울 정도로 같이 일했던 일주일이 즐거웠다. 아무래도 이 동생은 동료 알바생 없이 외롭게 일하며 느꼈던 아쉬움을 달래주려고 대만이 보내준 선물임이 분명했다.
역시 이 한식당에서 일했던 건 대만 워홀 최대의 행운이었다.
“크아, 시원하다.”
후임 동생과 헤어지고 돌아온 방. 이 집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며 혼술을 했다. 메뉴는 늘 마시던 爽 맥주와 마라 새우깡. 爽. 귀엽게 생긴 이 글자는 ‘쑤앙’이라고 읽는데, ‘시원하다’라는 뜻이다.
‘시원하다.’ 딱 지금 내 마음이었다. 드디어 이 집을 떠난다니! 대만 워홀 두 번째 쉐어하우스였던 이곳에서 살았던 4개월. 첫 쉐하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랑 같이 사는 건 역시 못할 짓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도 방 자체는 아담하고 따뜻해서 좋았다. 집 위치도 알바 했던 식당이랑, 지하철역이랑 가까워서 편했고. 어쨌든 별 탈 없이 잘 살았다. 그럼 됐다.
그렇게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타이베이에서의 ‘쑤앙’한 마지막 밤을 만끽했다.
대만 워홀 302일째였던 2022년 3월 5일 오전, 타이베이역으로 갔다. 무거운 캐리어 두 개와 요가 매트를 들고 향한 곳은 기차 타는 곳이 아닌 푸드코트. 떠나기 전에 만날 사람이 있었다.
“롱롱~ 가지 마요~~”
외로운 타이베이 생활을 버티게 해 준, 나의 유일한 대만 친구 도리씨였다.
도리씨는 고맙게도 나를 배웅하러 집에서 꽤 먼 역까지 와주었다. 안 그래도 혼자 기차 타러 가면 쓸쓸할 것 같았는데 다행이었다. 아주아주. 게다가 인심 좋은 도리씨는 맛있는 점심도 사줬다. 심지어 선물까지 줬다. 원래 지난 내 생일에 주려고 샀던 거라면서. 밝게 웃으며 말하는 도리씨를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날 도리씨가 만나자고 했지만 혼자 있고 싶어서 핑계 대고 거절했었던 게 떠올랐다.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어쩜 난 이렇게도 이기적일까? 정말이지, 도리씨에게 너무 미안했다.
“고마워요. 도리씨가 있어서 타이베이에서 잘 지낼 수 있었어요. 한국 가기 전에 우리 꼭 다시 만나요!”
“울지 마요, 롱롱. 제가 여기서 기다릴게요~”
그렇게 말하는 도리씨도 티슈로 눈가를 닦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봤다면 뭐 하나 싶었을 거다. 여자 둘이 아이스크림 퍼먹다 말고 서로 얼싸안고 울고 있다니. 눈물은 났지만 행복했다. 날 기다려 주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나와 눈물 갬성이 통하는 도리씨가 내 친구여서. 타이베이에 살아서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인연이었다.
오후 5시. 까오티에(高鐵, 대만의 고속 열차)는 도리씨와 타이베이를 남겨두고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동그랗고 말간 주홍빛 태양이 퇴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타이중 도착하면 어두워져 있겠구나. 오늘 집에서 나온 게 10시였는데 벌써 저녁이라니. 시간 참 빨리도 가네.’
귀국 전까지 남은 두 달. 타이중과 타이난을 들렀다 가오슝에 정착해 대만의 남쪽과 동쪽을 샅샅이 훑으며 보낼 예정이었다. 새로운 도시에서 완전한 혼자가 되어 보낼 워킹 ‘홀리데이’.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럼 또 보자, 타이베이. 짜이찌엔(再見, 또 봐)!
안녕하세요, 끼미입니다^^
어느덧 <대만에 살러 왔습니다> 시즌 3의 마지막 글입니다.
늘 그랬지만 특히 이번 시즌은 '대만 워홀 생활기'라는 이름에 맞는 글일까 고민이 많았어요.
알바하고 여행 다닌 이야기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계실까.
머릿속에 사공이 너무 많아 글이 때로는 산으로, 때로는 바다로 향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함께 해주시는 여러분들 덕분에 시즌3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마지막이 될 시즌 4에서는 좀 더 읽을 만한 이야기로 잘 준비해서 돌아오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