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종료 D-3, 단골 손님의 마지막 선물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3#29

by 끼미


2022년 3월 2일, 기적이 일어난 날. 한국에서 온 대만 한식당 알바생인 나는 밀려드는 손님들 사이에서 정신없이 뚝배기를 나르고 있었다. 갈수록 힘들지만, 화상의 여파가 아직 있지만 괜찮았다. 이 알바도 이제 3번만 더 하면 끝이었다. 드디어 워킹 홀리데이의 워킹이 끝난다니.


마지막 출근 디데이가 줄어드는 건 분명 기쁜 일임에도 동시에 아쉬움도 커졌다. 따악 한 번만 더 그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만에서, 이 한식당에서 만난 기적, 허광한. 알고 보니 이곳의 단골손님이었던 그는 애석하게도 지난해 11월 19일을 마지막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가 잦아들자 우리의 대스타님께서는 더욱 바빠지셨다. 그래도 알바 그만두기 전에 한 번만 더 나타나 주시기를, 하고 매일 출근길에 간절하게 기도했다. 이미 3번이나 봤으면서, 싸인도 받았으면서!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었다.


이제는 아주 능숙해진 손놀림으로 테이블을 닦다가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카운터에서 누군가 사장님께 포장 주문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저 듬직한 어깨는....?


그였다. 참새 목이 왜가리 목 되도록 기다렸던, 그.


허광한(許光漢).




늘 먹던 소불고기를 주문한 그는 이따 다시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주방에서 그의 소불고기를 조리하는 동안 홀에서는 고요한 야단법석이 한창이었다. 물론 나 혼자. 머릿속으로 ‘어떡해, 무슨 말하지?!?!‘를 연신 반복하며 그에게 줄 도시락 용기에 반찬을 담았다. 콩나물 무침 가득, 미역 초무침 듬뿍, 오뎅볶음 양껏. 몸 관리하느라 탄수화물인 밥은 많이 안 드실 테니 대신 반찬을 많이 담았다. 내 마음과 함께.


완성된 그의 소불고기. 언제 오시려나 문쪽을 쳐다보다가 유리창 너머의 그와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가게로 들어와 계산부터 했다. 심장이 쿵쾅쿵쾅거렸지만 별일 없는 듯 그가 준 지폐를 돈통에 넣고는 준비한 도시락을 건넸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곧바로 나가는 그. 미리 챙겨뒀던 휴대폰을 들고 그의 뒤를 조심스럽게 쫓아가는데,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던 사장님께서 그를 부르셨다.


"이 친구 곧 귀국하는데 같이 사진 찍어줄 수 있어요?"


사장님께 서운하다고 했던 거 완전 취소.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려는 사장님에게 그가 되물었다.


"셀카요?"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남이 찍어주는 사진보다 본인이 직접 찍어준 셀카가 훨씬 좋은 팬의 마음을.


가게 밖으로 나간 우리 둘. 먼저 손을 내민 그에게 내 폰을 건넸다. 그는 내 폰을 들고 요리조리 셀카 각도를 잡더니 나를 쳐다봤다. 순간 심장이 잠깐 멈췄다. 진짜로. 그의 옆에 선 나는 우리 둘의 모습이 담긴 폰 화면을 쳐다보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그는 없던 신앙심도 생기게 하는, 그야말로 ‘광(光)’, 빛이었다.




셀카를 무려 세 장이나 찍어준 그는 나에게 다시 폰을 돌려줬다. 지금이었다. 그에게 주접떨 마지막 기회. 그동안 그를 다시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냈다. <상견니> 보고 대만에 왔다, 당신의 연기도 노래도 너무 좋다... 내가 중국어를 공부하게 만든 장본인에게 중국어로 사랑 고백을 하다니.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중얼거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고맙다고 답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왔다는 나에게 물었다. "한국 어디 살아요? 서울?“


세상에. 그가 나에게 질문을 하다니, 그의 입에서 쇼우얼(首爾, 서울)이 나오다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친절한 그가 다시 물어왔다. 아까보다 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더 가까이 다가와서. 나 이러다 심장마비로 죽는 거 아니겠지?


다정한 그는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자신의 팬에게 덕담으로 행운을 빌어주었다. “平安無事(평안하고 무탈하기를)”. 정확하게 알아듣진 못했지만 이런 비스무리한 말을 했다. 조금 전 같이 셀카 찍을 때의 나처럼 두 손 합장하고 고개 숙이며. 캄캄하던 내 앞날이 갑자기 밝은 빛으로 환해지는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선 그와 더 대화하고 싶었지만 배고파서 저녁 사러 온 손님을 오래 붙잡고 있을 순 없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와의 일대일 팬미팅. 진짜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뒀던 한 마디를, 아니 한 동작을 그에게 수줍게 건넸다. 당시 최신 유행이었던 손가락 하트. 역시 이때의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런 오글거리는 짓을 하다니! 그러나 그 다음에 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내 하트를 받은 그도 엄지와 검지를 교차해 하트를 만들어준 것이다. 웃으면서.


이제 미련 없이 타이베이를 떠날 수 있게 됐다.

단골 손님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선물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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