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가성비에 대하여
퇴사 후 자유로운 도비의 몸이 된 지 5개월차.
지금처럼 오롯이 혼자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24시간을 보낸 지는 한 달 정도 됐다.
가진 게 그리 많지 않은, 다음 진로가 정해지지 않은 30대 백수라는 지위상
가끔 마음에 큰 파동이 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긴장을 내려놓고 지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대학원 다닐 때는 논문 쓰느라, 임용고시 준비할 때는 시험 걱정하느라,
학교에서 일할 때는 수업 준비하느라, 빵집에서 일할 때는 다음날 새벽에 일어날 걱정하느라
집에서도 온전히 마음을 내려놓고 쉬어본 적이 없었다.
최소 10년 동안은 24시간 내내 오들오들 떨며 지내왔다. 아마 다들 그렇게 살고 있겠지만.
마음의 평화를 찾기 시작한 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브런치에 3년 묵은 대만 워홀 이야기를 써서 올리기 시작한 지 한 달 조금 넘었다.
쓰다 보니 대만 음식 이야기도 소개하고 싶고 내 생각도 쓰고 싶고 내 과거도 세상에 내놓고 싶어서
요즘은 '아, 쓰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드는 글이면 이것저것 다 써보고 있다. 마치 과학 실험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과연 내 글을 누가 읽어줄까?' 싶었지만 운이 좋게도 100명이 넘는 구독자 분들이 생겼다.
아마 대만 음식 글을 보시고 구독해 주시는 분들인 것 같은데
감사하게도 그외 다른 글에도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댓글을 남겨주시기도 한다.
학교에서 수업할 때도 아이들이 반응 없을 때 가장 힘들었던 나로서 반응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감사하다.
여러분들의 클릭 한 번, 타이핑 한 번이 아니었더라면 지금까지 글을 계속 쓸 수 있었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한 편 쓰는데 최소 2~3시간은 족히 걸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글쓰기에 조금은 익숙해진 지금 기준이지, 처음 몇 주는 이틀에 걸쳐 글 하나를 완성했었다.
대만 워홀 에세이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어떤 말을 써야 할지 몰라서,
옛날 옛적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수많은 사진 파일들을 헤집고 다니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더욱이 지금 올리고 있는 워홀 초기의 이야기들은 지독하게도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들이었기에
어떤 날은 그 시절을 회상하다가 우느라 지쳐서 글을 못 썼던 적도 있다.
대만 음식 이야기인 《대만에 먹으러 왔습니다》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이거 맛있어요~"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관련 정보를 전달하고 가봤던 식당을 추천하다 보니
가볍게 쓰고 싶어서 시작했던 의도와 달리 "대만 음식을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까지 생겼다.
다음(Daum) 메인 페이지에 몇 번 올랐던 후로는 더욱 신중해졌다. 맛집 기자가 된 기분이랄까.
누군가는 힘을 빼고, 마음 편하게, 쓰고 싶은 대로 그냥 쓰라고 하지만 이상하게 그게 잘 안 된다.
'오늘은 한 시간만에 써보자!'라고 굳게 다짐하며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도
어느새 쉼표 하나, 띄어쓰기 하나에 진심이란 진심을 다 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다 보니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면 온 몸에 진이 다 빠져서 그야말로 넉다운 상태가 된다.
아직 출산의 경험은 없지만 글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마치 아이 한 명을 낳은 듯한 착각이 든다.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하면 나의 글쓰기는 가성비가 아주 극악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백수라지만 모든 시간은 금인데 수십 시간을 들여도 돈이 되질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다른 분들의 글을 많이 찾아봤었는데
특히 '응원하기'를 받는 분들의 글을 보며 어떤 글을 써야 나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했었다.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나에게 오는 게 있다면
'돈도 안 되는 일에 시간 낭비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조금은 덜 찾아올 것 같았고,
내가 쓴 글로 단 천 원이라도 수입이 생긴다면
'나 작가 될 거야!'라는 작은 꿈을 엄마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염탐은 나에겐 동기 부여보다 '독'으로 작용했다.
'어떻게 하면 반응이 올까?'라고 생각하다 보니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안의 한을 풀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인데 한풀이는 커녕 답답함만 쌓여갔다.
그래서 내려놨다.
요즘은 '나의 마음 치료를 위해 일단 쓰자!'는 마음으로
돈이 되든 안 되든, 좋아요가 몇 개 달리든 그냥 쓰고 싶은 말을 쓴다.
한 자 한 자 쓰다 보면 답답한 현실도, 막막한 미래도 잊혀지고 오로지 글만 보인다.
무엇보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나 자신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가성비는 똥망일지 몰라도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치료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니
어쩌면 글쓰기에는 가성비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감히 작가라는 꿈을 품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어떤 글을 쓰면 돈이 될까?'라는 생각은 수시로 나의 타이핑을 방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글을 쓰고 싶다. 글 쓰는 것도 좋고 글 쓰는 나도 좋으니까.
그래도 언젠가 내가 쓴 글로 돈을 버는 날이 온다면 엄마에게 좋은 운동화 한 켤레 사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