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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Sep 24. 2024

오늘도 옆 사람이 울었다

철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

상담을 마치고 지하철 타고 이동하던 중이었다. 맨 끝자리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눈만 꿈뻑꿈뻑 거리고 있었다. 오늘도 상담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다가 울어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양쪽 귀에 낀 이어폰에서는 가수 윤하님의 《태양물고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거운 생각에 너무 깊이 빠지고 싶지 않아 고른 신나는 곡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옆자리에 앉아 계신 분이 신경 쓰였다. 슬쩍 쳐다보니 파란 마스크를 낀 긴 생머리의 여성 분이 갈색 핸드백 위에 가지런히 올려둔 두 손을 만지작거리고 계셨다. 내가 답답할 때마다 하는 손짓이었다. 시선을 위로 옮겨 그 분의 눈을 쳐다봤는데 붉어진 눈가가 촉촉했다. 역시나 했지만 혹시나 싶어 고개를 돌리고 다시 바라본 맞은편 창문에 그 분의 얼굴이 비쳤다. 역시나 울고 계셨다.


듣고 있던 노래를 일시정지했다. 신나는 노래를 들을 때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티나지 않게 곁눈질로 옆자리의 기척을 살피는데 이윽고 파란 마스크 위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떨어졌다. 한 방울이던 눈물은 옆에서 들리는 깊은 한숨과 함께 두 방울, 세 방울이 되더니 이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옆에서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더 이상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가방을 열어보니 다행히 어느 카페의 것으로 보이는 연갈색 화장지 한 장이 있었다. 옆에서도 핸드백 안을 뒤적거리는 손짓이 눈에 들어왔지만 작은 물티슈만 있는 것 같았다. 안되겠다 싶어 핸드백 위로 조심스럽게 티슈를 건네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자리에서 화장지로 황급히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이 창문에 반사되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크게 들썩이는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었지만 괜히 기분 나쁘신 건 아닐까 싶어 참았다.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데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힘내라는 말이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한 장 밖에 없는 화장지를 원망하며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뿐이었다. 불빛이 훤한 지하철 안에서 눈물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내보내는 그 기분, 지금 이 순간 누구라도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 또한 잘 알기 때문이다. 며칠 전의 내가 그랬으니까.


결국 내릴 역이 되어서도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고 내려야 했다. 대신 상담 선생님이 주신 작은 호두 타르트 하나를 건넸다. 울고 나면 힘이 없을 테니 당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울음 가득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하는 그 분께 인사를 하고 내리며 속으로 말했다. 울고 나면 괜찮아질 테니 우셔도 된다고, 울고 나서 타르트 먹으면 나아질 거라고. 그게 동병상련의 입장으로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며칠 전에도 우는 사람을 만났다. 추석 연휴의 어느 밤, 한강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한 여성 분이 옆자리에 앉자마자 우셨다. 어두운 한강을 보며 한참 우시는 그 분 옆에 앉아 "혹시..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 얘기 있으시면 들어드릴게요.. 저도 답답해서 나온 거라서..."라고 적은 휴대폰 화면을 보여드릴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이럴 나는 누구라도 나를 위로해 줬으면 좋겠던데 다른 사람들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웠다. 결국 이 날은 고민으로 그쳤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그 분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용기를 냈다. 오늘 만난 분은 한강에서의 그 분과 달리 휴지도 없으셨기에, 사람 많고 불빛 훤한 지하철 안이었기에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비록 나도 요즘 매일 울지만, 누굴 위로할 처지도 안 되지만 그래서 더욱 우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이들도 나처럼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걸까? 나처럼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걸까?


다음에 또 우는 누군가를 마주친다면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싶다. 내가 바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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