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
가끔 내가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이세계(異世界)'.
저녁을 먹고 집 앞에 있는 논길로 산책을 나왔다.
오늘 하루도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흘러갔다는 생각에 울적했다.
한 일이라곤 겨우 글 한 편 쓴 것뿐인데 기운이 빠져 낮잠을 자버렸다. 두 시간이나.
아직 건강이 덜 회복된 걸까 아니면 내 의지가 약한 걸까.
시원한 바람이 부는 논길을 걷다 멈춰섰다.
주홍빛 하늘이 서서히 남파랑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신비로운 시간, 하루 중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다.
양쪽 귀에 낀 이어폰에서 <구름의 그림자>가 흘러나왔다.
요즘 많은 힘을 얻고 있는 가수 윤하님의 노래다.
"지금 같은 모습은 아니더라도
어디에든 있을테니
사라지는 것들에 슬퍼하지마
너와 함께 있을테니"
<구름의 그림자>라는 제목답게
구름에서 비로, 비에서 바닷물로, 바닷물에서 구름으로 순환하는 물에 대한 노래지만
이 가사를 들을 때마다 죽음에 대한 양자역학의 설명이 떠오른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는 입자들의 우연한 결합으로 만들어지며
죽음이라는 건 존재를 이루고 있던 입자들이 주변으로 흩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생명체가 죽는다고 해서 완전히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고.
내 몸을 스치는 이 바람 속에 우리 고슴이들의 흔적도 남아 있을까?
따뜻하고 부드럽던 털을 이루던 탄소 입자가,
뾰족하던 가시를 구성하던 질소 입자가 이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을까?
양자역학의 설명대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고슴이들은 나와 함께 있는 걸까?
캄캄한 밤 하늘에 별이 뜨고도 한참이 지나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 티비에서는 일일 연속극이 방영되고 있었고 아빠는 자고 있었다.
방 안에 누워있던 엄마는 낮에 삐끗한 허리가 아프다고 파스를 붙여달라고 했다.
엄마 허리에 동생이 일본에서 사왔다는 동전 파스를 붙여주고 거실로 나와
낮잠 자느라 놓친 커피 한 잔을 타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멍, 했다.
불과 10분 전까지 양자역학이니 뭐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게 꿈처럼 느껴졌다.
돌아온 집은 양자역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었다.
이 세계로 돌아왔다. 현실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요즘,
이 세계를 떠나 나만의 이세계(異世界)로 자주 여행을 떠난다.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음악을 들으며, 사진을 찍으며 나만의 세상으로 빠져들어간다.
나만의 생각과 감성으로 채워진, 오로지 나만 들어갈 수 있는 이세계.
그곳에서 나는 마음껏 상상하며 막막한 현실로부터, 부족한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된다.
무아(無我)의 세계에서 진정한 내가 된다. 어떤 꾸밈도 없는 날것의 나.
나의 이세계는 너무나 좋지만 언제까지 이곳에서 살 수는 없다.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너무 깊이 빠지지 않게 경계해야 한다. 미치광이가 될 순 없으니까.
이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나의 육신이 있는 이 세계에, 이 현실에.
그래도 이 세계가 아닌 이세계에서 살고 싶다면,
그건 너무 철없는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