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1
오늘은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글 쓰기에, 아니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는 것에 조금 지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이 늦은 시간(자정 12시가 넘었다)에 또 다시 브런치에 들어와서 '글쓰기'를 누르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문득 쓰고 싶어졌다. 나의 '글 쓰는' 이야기를.
브런치에 연재 중인 두 개의 대만 이야기를 제외하고 요즘 쓰는 글들은 다 그런 식이다. 산책하다가, 요리하다가, 청소하다가 불현듯 내면에서 일어난 파도가 나를 키보드 앞으로 밀어놓는다. 제목 한 줄만 써놓고 시작하는 날도 있고 몇 개의 단어를 적어두고 써내려 가는 날도 있다. 어쨌거나 글의 구성이라거나 결론을 생각하고서 쓰는 경우보다는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글들이 많다. 지금 이 글도 그러하다(아직 제목도 정하지 않았다).
계획하고 쓰는 대만 이야기든 손가락 가는 대로 쓰는 글이든 어쨌든 매일 글이라는 걸 쓰고는 있다. 올 5월에 퇴사하고 나서 세웠던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다시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나름대로 잘 지키고 있는 셈이다. 뭐, 이전에도 꾸준히 글을 쓰긴 했었다. 대만 워홀 당시에는 블로그에 매일 일기를, 빵을 배울 때는 매일 수업에서 배운 것을 포스팅했었고, 빵집에서 일할 때는 <근무 일지> 노트와 다이어리에 매일 그날의 일을 썼었다. 지금 같은 글은 아니지만 어쨌든 글은 글이니.
가장 쓰고 싶었던 글은 퇴사를 결심하고서야 비로소 쓸 수 있었는데, 바로 대만 워홀 이야기였다.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바꿔준 그 1년을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은 쭉 갖고 있었지만, 학교에서 일하느라, 빵을 배우느라, 빵집에 새벽 출근하느라 손대지 못했었다. 사실 그보다도 대만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면 터졌던 울음이 방해한 탓도 있었다. 그러다 퇴사 후 곧장 달려간 대만에서 2년 동안 쌓였던 그리움을 풀고 돌아오니 느껴졌다. 드디어 대만 이야기를 쓸 마음의 준비가 됐다는 것이.
처음부터 브런치에 연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한글 같은 데 써뒀다가 출판사에 투고를 시도하기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글'을 쓰려면 연습이 필요하니 블로그에 '글 같은 글'을 올려보기 시작했다. 빵집에서 퇴사한 이유, 내가 내 이야기를 못 하는 이유처럼 순수한 내 생각을 적기도 하고, 책의 어떤 문장을 보고 든 생각을 쓰기도 하면서 조금씩 긴 글 쓰는 연습을 했다.
'연습'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나의 널뛰는 마음과 뒤얽힌 생각을 정리하려고 쓰는 것에 가까웠다. 퇴사 후 매일 자유로운 24시간을 보내다 보니 하루종일, 심지어 잘 때도 각종 생각과 그로부터 야기된 불안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썼다. 머릿속을 둥둥 떠 다니는 이 실체 없는 두려움을 하얀 종이 위에 옮기고 나면 막혀 있던 숨통이 트였다.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서, 불안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마음 속의 한을 뱉어냈다. 글로써, 말로써.
그렇게 글을 올리다보니 어느 날부터 '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 '글에서 진솔한 마음이 느껴진다'와 같은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런 댓글을 받을 때면 심장이 울렁거리다가 기어코 울음이 터졌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내가, 아무런 쓸모도 없는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좌절에 빠져 있던 나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주었다. 얼굴 모를 누군가가 보낸 그 한 마디들이 나를 지금 이곳,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여기까지 쓰는 데 벌써 한 시간이 걸렸다. 매일 글을 쓴 지 6개월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글 쓰는 건 어렵고 느리다. 돌이켜 보면 늘 그랬다. 학부 때 부러 글 쓰기 과제가 있는 수업을 찾아들으면서도 마감 직전까지 글을 고치다 겨우 제출했었고, 대학원생 때도 아무도 듣지 않을 발제문 하나에도 진심을 다해 수업 1분 전에야 겨우 출력해서 강의실에 들어갔었다. 글 쓰기 수업에서 높은 학점을, 교수님께 글 잘 쓴다는 칭찬을 받았던 것만 기억하고 있었지, 나의 이 굼벵이 같은 글 쓰는 속도는 잊고 있었다. 이런 나도 글 쓰는 걸 업으로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다시 글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지난 여정을 돌아보고 나니 다시 글 쓸 기운이 난다.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회상하니 어떤 글을 써야 할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그 뒷 이야기는 다음 편에 써야겠다는 것도. 내일도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길 바라며 자러 가야지. 오늘도 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