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옹지마 Aug 31. 2022

등기우편으로 배달된 1999년-1-

오늘도 참 많고 다양한 민원인들을 만났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하루를 생각해보니 부끄럽지도 후회도 없는 날을 보낸 거 같아 다행이었고 그런 나 자신이 조금은 대견스러웠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매콤한 오징어 삼겹살을 볶고 있었다. 

“손 닦고 오세요.” 

편안한 반바지로 갈아입고 식탁에 앉자 식탁 위에는 고구마 줄기 볶음과 어제 장인어른 기일에 장모님이 담그신 새콤한 오징어오이무침이 놓여있었다. 

바로 이어 오늘의 메인 요리인 오징어 삼겹살 볶음이 “지글지글”소리를 내며 냄비 받침에 놓였다. 

먹기도 전에 맛있는 냄새는 침샘 분비를 촉진시켰다. 

“꼴깍”하고 침을 삼키는 사이, 이미 손에 들려있는 젓가락은 빨간 고춧가루 양념이 먹음직스럽게 배인 돼지고기 한 점을 집어 들고 있었다. 

밥맛과 두루치기의 매콤함은 입 안에서 서로 뒤섞이며 아주 조화로운 맛을 만들어 냈다. 

“여보, 당신 앞으로 등기우편이 왔어.” 

등기? 나한테 올 등기가 없을 텐데 무슨 등기지? 

등기우편은 보통 좋은 소식을 알리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터라 찝찝한 긴장감은 내 몸을 휘감았다. 

“혹시 교통신호 위반 범칙금이야?” 

아주 가끔씩 예상치 않게 등기우편으로 신호위반이나 속도위반 딱지가 날라 오는 기분 나쁜 경험이 있어서인지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이 교통위반 범칙금 고지서였다. 

“아냐, 서류봉투로 왔어. 갖다 줄게.” 

아내가 건네준 서류봉투에 적혀있는 발신인은 ‘선화 2구역 재개발 정비사업조합 조합장 000’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서류봉투 입구 사이를 검지 손가락을 넣어 뜯어냈다. 

서류봉투 안에는 두 장으로 된 ‘보상에 관한 협의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서가 들어있었다. 

‘선화 2구역 재개발에 따른 보상에 관한 협의 요청?’ 

선화동 재개발 소식을 이 서류를 통해 알게된 나는 도대체 이 공문을 왜 나한테 보냈는지 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 미궁을 풀 실타래는 바로 다음 장에 있었다. 

부동산 소유자 윤광수. 가압류 관계인 안상태. 

나보다 한 살 많은 광수형을 만난 것은 1999년,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대학교 3학년으로 복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복학 후 첫날, 신입생으로 입학해 지금껏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반가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학과 게시판에 붙어 있는 '야구동아리 창단을 위한 회원 모집 공고'가 그것이었다.

나는 우리 과에서 '야구소년'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야구는 내 새내기 대학생활의 행복이자 에너지였다. 

'안상태를 만나고 싶으면 운동장에 가면 된다.'라는 말이 과 동기들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나는 늘 친구들을 선동해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 캐비닛은 책 대신 야구 글러브, 방망이, 공 등 갖가지 야구 용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러니 제대 후 접한 야구동아리 창단 공고는 칙칙한 예비역 대학생활에 새벽 여명과도 같은 기대와 설렘으로 다가왔으며, 내 심장을 뛰게 하는데 충분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법이 갈라놓은 20년 사실혼의 노부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