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옹지마 Sep 14. 2022

인터넷 소설 등기우편으로 배달된 1999년 -4-

인터넷 소설 등기우편으로 배달된 1999년 -3- (brunch.co.kr)


성덕이는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바로 말을 뱉어냈다.


싸한 느낌이 들었다.


“어, 빌려줬지. 왜? 혹시 광수형한테 무슨 일이...”


이번에도 성덕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성덕이는 1년 전 즘 광수형을 만났다고 했다.


술도 한 잔 했다고 했다.


광수형은 나에게 했던 똑같은 말로 자신에게도 돈을 빌렸었다고 했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큰돈인 1억이나 말이다.

성덕이도 나만큼이나 광수형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광수형은 약속한 날짜에 돈을 갚지 않았으며, 차일피일 미루더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연락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성덕이는 고소장을 제출했고 압류 절차를 통해 광수형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빨간딱지를 붙여서야 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야구동아리 후배들은 물론 학교 선후배들에게 수십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가리지 않고 돈을 빌렸다고도 했다.


성덕이는 야구동아리 시절 나와 광수형의 친분을 알고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고마운 전화였지만 청천벽력 같은 전화이기도 했다.


성덕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광수형과 전화통화가 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성덕이는 현재 광수형의 아파트는 이미 여러 명의 채무자들에게 가압류가 된 상태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돈도 돈이지만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광수형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형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답장이 오지 않을 거란 것을 알지만 문자를 보냈다.


‘형, 도대체 무슨 일이야? 괜찮은 거야?’


십 분 정도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광수형이었다.


광수형은 내가 묻기도 전에 만나서 다 이야기를 하겠다며 내가 사는 동네로 오겠다고 했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저녁 7시 우리는 곰장어 집에서 그렇게 다시 만났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기 전 유리벽 너머로 식당 안을 들여다보니 광수형은 여섯 개의 스테인리스 원탁 중 맨 안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식당 한쪽 벽에 걸려있는 TV에서 중계되고 있는 지역 연고 구단의 프로야구 경기를 아무 표정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물을 열자 문 위에 설치된 종이 “딸랑”걸렸다. 


이 소리를 들은 광수형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손을 반쯤 들어 올리더니 아무도 없는 식당에 무의미한 행동이라고 깨달았는지 바로 손을 내렸다.


나는 그런 광수형의 행동에 “피식”하고 웃으며 형이 수저와 물컵을 세팅해 놓은 자리에 앉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소주 한 병과 소금 곰장어 2인분을 주문했다.


광수형의 처지를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잘 지냈느냐?"는 안부를 묻기도, "왜 돈을 갚지 않느냐?"고 나무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은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기본 반찬과 소주를 가져왔다.


무슨 말을 꺼냐야 할지 모르는 이 어정쩡한 분위기를 깨줄 수 있는 사장님의 빠른 손놀림이 고마웠다.


나는 먼저 광수형 잔에 소주를 가득 채우고 내 잔에도 채웠다.


예전 같았으면 술병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의 술잔을 채웠겠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 잔이 비워지고 채워질 때까지 우리는 누구도 먼저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가 참 어색했다. 


광수형과 이런 분위기라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광수형은 세 번째 잔을 비우고 탁자에 내려놓더니 입을 열었다.


“상태야, 미안하다.”



“형, 도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형에게 있었던 거야?”


안주 없이 소주 한 잔을 더 들이켜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엄마 재혼한 거는 알고 있지?”


광수형의 새아버지는 아파트나 비교적 큰 건물의 신축 공사에서 전기공사를 수주받아 도급을 맡기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아버지의 회사가 갑자기 어려움 겪게 됐고 부도를 막기 위해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신 재산까지 다 쏟아부었지만 결국 부도를 피할 수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들의 돈을 빌렸던 것도 부도를 막기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부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소유로 있는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들도 돈을 빌려줬던 사람들에게 압류가 되었고, 현재 빚으로 이혼도 한 상태라고도 했다.


누구보다 부유한 인생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광수형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상태야, 내가 서른 평 정도 되는 땅이 하나 있어. 선화동에 있는 땅이야. 그런데 맹지야.”


그 땅은 건물로 뒤덮여 있을 뿐만 아니라 진입로가 없어 말 그대로 가치가 없어 매매가 되지 않는 맹지라는 것이다.


그런 탓에 아직 압류가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광수형은 자신을 사기죄로 형사고소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채권회수 민사소송 진행하고 그 맹지를 가압류를 하라고 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라고 했다.


광수형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이 같은 사실을 모두 아내에게 이실직고했다.


내 우려와는 달리 아내는 별 말없이 광수형의 처지를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형을 고소하란 말인가.


그렇다고 정말 어려운 처지에 어렵게 모은 돈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날 회사에 반차를 내고 관할 경찰서로 향하는 길 내내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5편에서 계속>




작가의 이전글 인터넷 소설 등기우편으로 배달된 1999년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