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범을 잡다.
오전 11시 42분. 아내의 카톡이 도착했다.
사진이었다. 이 글을 쓰게 만든 사진이었다.
집 앞에 세워놓았던 내 차 사진이었다.
사진 속 내 차는 운전석 손잡이 주위가 하얗고 파랗게 변해있었다.
사진을 엄지와 검지로 확대하니 운전석 키박스는 떨어져 나가 버렸고, 손잡이 주위 앞 뒤 문짝은 우그러져 있었다.
내 손은 벌써 아내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벨이 울리는 그 잠시 동안에 ‘오늘 아침 아들이 병원을 간다고 했는데 함께 가서 병원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긁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동네의 병원 건물 주차장들은 대부분 입구부터 곡예 운전을 해야 할 정도로 굉장히 좁았기 때문이다.
“차가 왜 저래?”
“나도 깜짝 놀랐어. 손잡이 부분이 찌그러졌어. 나도 지금 발견한 거야. 혹시 당신 출근할 때는 어땠어?”
“글쎄, 무의식적으로 차를 보기는 하지만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음. 그럼 당신 출근 때까지는 괜찮았던 거네.”
“일단, 112에 신고해. 그러면 경찰이 조사 나올 거야. CCTV 많으니까 금방 잡힐 거야.”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렇지만 마음은 불안했다.
내 차의 블랙박스는 운행 중에만 켜져 있는 상태로 설정돼 있어 사고 당시의 장면이 녹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근길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찰서 조사관님이 나오셨어. 그런데 일이 엄청 꼬이네. 쉽지 않겠어."
“왜?”
“교회 입구에 당신 차를 정면을 촬영하고 있는 CCTV가 있거든. 그래서 목사님께 부탁해서 조사관님하고 CCTV를 보려고 했어. 그런데 감사하게도 목사님이 흔쾌히 허락해주시긴 했는데 녹화된 영상을 보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거야. 문제는 목사님이 연로하셔서 비밀번호를 기억 못 하셔."
아이고야. 헛웃음이 나왔다.
집에 도착해 내 차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차의 상태는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문 손잡이 부분이 우그러져 문이 아예 열리지도 않았다.
속상한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다른 CCTV를 찾기 위해 고개를 여기저기로 두리번거렸다.
CCTV는 차 뒤편 굴국밥집 식당에, 그 옆 노래방에, 도자기 가게에, 무인 애완견 셀프 목욕탕, 차량 바로 옆 중국집에 설치된 게 보였다.
그런데 참 답답하게도 이 식당들의 CCTV는 식당 입구 쪽을 바라보게 설치돼 있어서 사고 장면이 촬영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실망하고 있는 찰나 차량 20미터 앞에 한우식당에 설치된 CCTV가 보였다.
‘좀 거리가 먼데? 보일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기대를 갖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저, 저 옆 건물에 사는 사람인데요.”
내가 식당을 찾은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CCTV 녹화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지 부탁을 했다.
여자 사장님은 내 설명을 듣더니 살짝 꺼려하는 눈치였다.
CCTV를 보여주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기에 이해는 됐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좀 더 간곡하게 부탁을 했더니 차를 한번 보자고 했다.
생각보다 크게 부서진 차를 직접 확인하더니 CCTV 영상을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은 확인하고 어렵고, 연락처 주면 확인해보고 전화 주겠다고 했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 시간을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었다.
다시 식당을 찾았다.
여 사장님은 그동안은 휴대폰으로 CCTV를 확인했던 터라 몇 시간을 돌려보려면 컴퓨터로 봐야 하는데 연결이 쉽게 안 된다며 내일 시간을 내서 확인하고 연락을 주겠노라고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식당을 나와 다시 한번 사고 현장이 촬영될 만한 근처 CCTV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라? 저건 뭐지?’
차 뒤쪽 왼편 15미터 거리에 아까는 보지 않았던 CCTV 카메라 한 대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노래방에서 설치한 CCTV 카메라였다.
카메라의 위치도 뺑소니 차량을 확인될 수 있는 각도였다.
노래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코로나 탓인지 방 하나에서만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장님~ 계세요?”
잠시 후에 오십대로 보이는 여자 사장님이 주방에서 나왔다.
생각해보니 노래방, 한우식당, 도자기, 굴국밥집, 애견 목욕탕 모두 사장님이 여자다.
우리 집 앞 골목식당은 여자가 대세인가 보다.
사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저는 할 줄 몰라서 알아서 편하게 보세요." 했다.
나도 처음 조작해보는 거라서 될까 하는 의심을 품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마우스로 화면을 몇 번 클릭하니 원하는 날짜 영상을 조회할 수 있었다.
2022년 7월 26일을 클릭하고 시간은 아침 9시로 설정했다.
9시로 설정한 이유는 중국집 사장님께서 가게에 온 시간이 9시였는데 사장님 차의 블랙박스를 확인해보니 그때까지는 내 차에 이상이 없었음을 말해줬기 때문이다.
뺑소니 소식을 전해 들은 중국집 사장님은 주차 당시 차량의 블랙박스는 물론, 혹시 가게 내에 설치된 CCTV에 녹화가 됐을까 돌려보셨다고 했다.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8배속으로 녹화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신경을 집중하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움직임 없이 꾸부정한 자세로 있다 보니 허리와 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45분경 흰색 차 한 대가 내차가 주차돼 있는 쪽으로 다가서더니 멈춰 섰다.
기분이 싸했다.
그 차는 내 차 뒤에 주차를 하려는지 “오다가다”를 여러 번 반복하더니 결국 실패하고 장소를 떠났다.
충분히 의심할 여지가 있는 차였다.
내 마음 안에 기대감이 샘솟았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불과 1시간 만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의심 차량은 흰색 소형 SUV였는데 실측을 해보기 위해 동네를 몇 바퀴 돌아 어렵게 같은 차량을 찾았다.
확인 결과, 이 차량은 차체가 높지 않아 앞뒤 범퍼 어디든 내차를 그렇게 만들기 어려웠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는 일. 실망을 뒤로하고 다시 CCTV를 돌려 보기 시작했다.
CCTV가 있는 노래방 카운터는 손님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에어컨을 켜지 않아서 굉장히 더웠다.
팔뚝으로 이마를 훔치자 땀이 흥건하게 묻어 나왔다.
등줄기는 땀으로 범벅이 된 지 오래였다.
11시 34분쯤 지날 때 눈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화면 속 골목 끝에 진입하는 우체국 택배 탑차가 목격됐기 때문이다.
이 탑차는 이내 방향을 틀어 내차 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이 탑차의 발견은 가해자 차량을 찾는 나의 생각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탑차의 뒷문 구조는 양문형으로 만약 문이 열린 상태로 운행을 하게 되면 차가 멈추고 설 때 문이 열리면서 내 차를 충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방에 녹화된 CCTV 영상 속 탑차의 뒷문은 열려 있었지만 고정이 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확연하게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내 휴대폰으로 녹화영상을 촬영한 다음 노래방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하고 밖으로 나왔다.
내 차의 사고 부위를 만들 수 있는 차량은 차체가 어느 정도는 높아야 했기 때문에 승용차보다는 탑차가 더 유력한 용의 차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고, 아내도 내 생각을 같이 했다.
날이 밝고 내가 출근한 사이에 아내는 탐정이 되어 영상 속 택배 차량을 찾기 시작했다.
가해 차량을 꼭 찾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수리비였다.
2년 전 불법 유턴 차량에 받혀 운전석 문이 찌그러지는 사고를 당했었다.
자동차 수리센터에 수리를 맡겼는데 문을 교체하는 비용이 2백만 원 넘게 청구가 됐었다.
이번에는 앞뒷문 모두 교체를 해야 되는 상황이어서 수리비는 족히 4백만 원이 넘을 것이고, 또 열흘이 넘는 수리 기간 동안 사용할 렌트를 생각하면 그 비용은 굉장히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외제차를 괜히 샀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내의 탐정은 택배 회사에 연락을 취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차가 주차돼 있었던 지역을 배송하는 택배 차량과 기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어렵지 않게 담당 택배 기사가 현재 아파트 10단지를 배송하고 있음을 확인했고, 아내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삼십여 분을 찾아 헤맨 끝에 택배차량을 발견했다.
택배기사는 50대로 보였다.
아내가 택배기사에게 사고 경위를 설명하자 기사는 의외로 선뜻 차를 확인시켜 줬다.
차량의 문을 확인했으나 안타깝게도 문에는 어떤 흠집도 찾을 수 없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따갑게 내리쬐는 여름날 태양은 허망한 마음으로 돌아서는 아내의 마음을 새까맣게 타들어가게 했다.
아내의 속상한 마음과는 별개로 자칫 피해 보상을 부담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친절하게 차를 확인시켜 줬던 그 택배기사의 응대에 약간의 의아함과 함께 고마움이 느껴졌다.
'만약 내가 택배기사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아내는 처진 어깨를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집으로 오는 중에 애견 셀프 목욕탕 건물 여자 주인을 만났다.
건물 주인은 뺑소니 사고 소식을 들었다며 아내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말을 걸어온 건물 주인에게 아내도 "아.. 네."라며 멋쩍은 인사를 했다.
멋쩍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사람이 건물 주인이라는 것. 이 건물 3층에 산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오며 가며 만나도 그 누구도 먼저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주인은 자신의 건물에 CCTV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는데, 사고 장소가 녹화된 영상을 10시간 가까이 돌려봤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뭘까? 왜 그러는 걸까?
집 앞 교회 목사님은 성직자이니까 그렇다 치고, 노래방 사장님, 애견 목욕탕 건물주님, 그리고 소고기 식당 사장님, 택배 기사님까지 이렇게까지 호의적인 이유는 뭘까?
마지막 남은 카드는 소고기 식당 CCTV 뿐이었다.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현재 시각 오후 2시. 아직 식당으로부터 전화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은 점점 더 깊어져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연락을 해보거나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제만 해도 두 번이나 찾아갔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간절하지만 그들에게는 귀찮은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짜증 나게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잘 해결될 거야.’라고 자기 위안을 하고 있을 찰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아내는 조금의 기다림도 없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바로 말을 했다.
“여보! 여보, 찾았어!”
“찾았다고?”
“응, 소고기 식당 사장님이 찾으셨대.”
아내도 내 마음과 같았나 보다.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 염치 불고하고 찾아간 것이다.
녹화된 CCTV 영상에서 오전 11시 40분경 내 차 주위를 서투른 운전 솜씨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고 있는 탑차 한 대가 있었다.
이 차는 “왔다 갔다”를 할 때 탑차 뒷문도 “열렸다 닫혔다”했는데 그러면서 문이 내 차를 충격하는 모습이 확인이 됐던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고 장소와 CCTV 카메라와의 거리가 있었던 터라 차량의 번호가 명확히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는 곧바로 이 차량의 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골목길의 다른 CCTV를 찾아 나섰다고 했다.
마침 경찰 조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사관에게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을 알리자, 조사관은 마침 다른 사고 조사차 인근 동네에 와있다며 오후 5시경에 소고기 식당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일이 급물살을 타는 것 같았다.
십여 분이 지나서 다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좋은 소식이었다.
도자기 가게 여 사장님께서 흔쾌히 CCTV를 보여주셨는데 그 녹화영상에 가해 차량의 번호가 확연하게 촬영이 됐다는 것이다.
수고한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더운 날씨에 정말 정말 고생했어."
"아냐, 나보다는 소고기 식당 사장님이 정말 애써주셨지."
휴~ 정말 다행이었다.
물론, 가해자가 인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남아있었지만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5시 20분경 퇴근길 버스 안에서 소고기 식당 여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은 남편이 아침 8시부터 가해 차량을 찾을 때까지 꼬박 영상을 돌려봤다고 했다.
그리고 경찰이 방문해 녹화된 영상을 복사해 넘겨줬다고 했다.
퇴근길 버스에서 내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소고기 식당을 찾았다.
직접 얼굴을 뵙고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가게 안을 들어서니 여 사장님과 남편인 남자 사장님이 모두 계셨다.
사장님에게 정말 감사합니다며 감사 인사를 건넸더니, 그분은 가해 차량을 찾기 위한 과정을 한참이나 설명해주셨다.
아침 7시에 가게에 나와 CCTV 녹화영상을 돌려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도 찾을 수가 없자 직원 차의 블랙박스까지 확인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식당 맞은편에 주차돼 있었던 차량의 주인에게도 부탁해 블랙박스를 확인했다고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끝내 11시 40분에 가해 차량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30분 동안의 다소 긴 설명이었지만 남자 사장님의 집요함 덕분에 가해 차량을 찾을 수 있었던 만큼 설명을 듣는 내내 웃음과 중간중간 감사하다는 말로 추임새를 넣으면서 경청했다.
생각해보면 이 일이 있기 전에 인사 한 번 나누지 않았던 사이임에도 한 골목에 산다는 이유로 나의 부탁을 자신의 일처럼 발 벗고 나선 소고기 식당 사장님의 마음은 감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도자기 가게 사장님 , 노래방 사장님, 굴국밥집 사장님, 교회 목사님, 순댓국밥집 사장님, 애견 셀프 목욕탕 건물주님 이들은 모두 우리에게 감동을 준 이웃, 골목길 사람들이었다.
그러고 며칠 후 일요일 오전, 조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해자를 찾아 보험접수가 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했다.
그리고 오후 3시경 가해자로부터 전화도 왔다.
사고가 있었던 날은 택배일을 처음 시작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정신없이 배송하다 보니 그런 사고를 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앳된 목소리의 가해자는 수차례를 죄송하다고 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서투르기 마련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녹록지 않은 일을 시작하는 첫날에 이런 일을 겪은 가해자, 택배 기사님에게도 나 또한 미안해졌다.
큰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골목길 사람들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