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새벽 복통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 밖에서 보안 요원이 체온을 체크하고 호흡기 증상이 있는지 물었다.
없다고 하니 응급실 안에 있는 수납창구로 안내해줬다.
환자 등록을 마치니 환자 인식 팔찌와 보호자 출입증 한 장을 건네며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방송으로 환자 이름을 부른다고 했다.
수납창구 직원은 응급실 안에는 보호자 한 명밖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잠시 기다리니 방송으로 아이 이름을 호명됐다.
보안 요원이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줬다.
들어가자 유리 칸막으로 되어 있는 작은 방이 있었고 그 안에는 보호장구를 착용한 간호사 한 명이 앉아있었다.
그 간호사는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 등을 묻고 다시 열을 체크했다.
이곳은 응급실 진료 전에 질병군에 맞게 환자를 분류하는 트리아제 룸이다.
응급실은 외래, 병동, 중환자실 , 수술실 개념이 합쳐진 포괄적 공간으로 경증부터 중증환자까지 모두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응급실에 환자가 내원하면 더 정확하고 빠르게 효율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트리아제 룸에서 중증도를 분류해야 하는 것이다.
2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그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아환자 구역 침상에 앉자 곧이어 또 다른 간호사와 젊은 의사가 다가왔다.
응급실에 왜 찾았는지,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확인하고 아픈 부위를 체크하고, 과거 병력은 있는지 등 수많은 질문을 쏟아 냈다.
그들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간호사가 찾아와(그 간호사가 나의 담당이다.) 수액을 달아주고, 피를 뽑는다.
그런데 혈관을 찾는데 서투르다.
피 뽑기 좋은 혈관을 찾으려는지 팔을 여기저기 돌려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른 팔을 잡아 이리저리 돌려본다.
만만한 혈관이 없나 보다.
몇 초의 시간이 지나고 혈관 하나를 응시하더니 손으로 “찰싹찰싹” 몇 번을 두드리고 바늘을 꽂는다.
“따끔합니다.”
“따끔”은커녕 꽂은 바늘을 여기저기 후비는 탓에 얼굴은 찡그려지고 심한 고통으로 “악, 아파요!”하고 아이는 화난 목소리를 뱉어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부모의 가슴은 미어진다.
결국 실패다.
다른 혈관을 찾아 또 바늘을 꽂는다.
또 실패다.
부모의 마음 속에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직 우리는 을이다. 화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중하게 부탁한다.
“죄송하지만, 다른 선생님이 채혈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간호사의 얼굴에도 미안함과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난해 다른 병원 응급실에서도 세 번 만에 피를 뽑았는데 도대체 응급실 간호사들은 왜 이렇게 채혈을 못하는 걸까?
이유는 응급실에는 신규 간호사가 많아서다.
물론, 그 신규 간호사도 채혈도 많이 해봐야 능숙해지고, 배워야 실력도 느는 것 당연하지만.
왜 하필 내가 그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그럼 경력 간호사는 어디에 있는 건가?
이유는 이렇다.
매년 병원은 3월 1일이 되면 신규 간호사들이 입사하게 된다.
막 간호대학을 졸업한 새내기 간호사들이다.
아무리 학생 시절 실습을 통해 채혈을 했다고 하지만 실전은 녹록지 않다.
실습은 건강하고 잘 보이는 혈관으로 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혈관들은 어린 아이나 나이 많으신 환자들, 그리고 병치레를 많이 한 환자들의 경우 혈관이 약하거나 잘 나오지 않아 이들의 혈관을 찾는 것은 보물 찾기만큼이나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응급실의 경우 병원에서는 특수부서로 일반병동과 달리 버라이어티 한 환자들이 오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신규 간호사들이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24년의 삶은 살아오면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어쩌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사람, 본인이 갑인 양 VVIP 대접을 받으려는 사람, 화가 넘치는 사람, 소리 지르고 욕을 하는 사람 등을 상대하다 보면 몸의 근육은 긴장이 되면서 그나마 있는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서 채혈을 해도 힘든데, 응급실에 온 환자들은 모두가 본인이 가장 응급한 환자라고 생각해 몇 분만 의료진이 나타나지 않으면 불만이 가득한 상태고,
또한 중한 병은 아닌지 하는 걱정으로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환자나 보호자의 눈빛을 신규 간호사가 이겨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응급실에는 신규 간호사가 많은 걸까?
앞서 말한 상황들처럼 응급실은 병원의 많은 간호 파트 중에 힘든 특서 부서다.
이런 경험을 하면 일부 간호사들은 ‘내가 이러려고 간호사가 됐나?’하는 자괴감에 빠지면서 퇴사를 결심하는, 아예 간호사란 직업 자체를 떠나는 이들이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 의료의 현실 특히 지방 병원들의 현실이다.
지방 대학병원들은 대부분 일 년에 2백 명 넘는 신규 간호사들을 채용한다.
그런데 일 년 뒤 남아있는 수는 10%도 되지 않는다.
간호사라는 일 자체를 그만두거나 임금은 적지만 교대근무 없이 비교적 일이 수월한 동네병원에 취직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전체적으로도 간호사가 부족하다.
매년 간호사가 배출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일하지 않는 유휴 간호사들이 많다는 것과 최근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이 늘어나면서 간호인력도 더 필요하게 됐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 대부분 간호대를 졸업한 신규 간호사들은 전국의 많은 병원에 동시 입사 지원을 한다.
서울대학병원에도 지원을 하고, 지역대학병원에도 지원을 하는 것이다.
합격을 했다 하더라도 병원의 TO가 나면 입사 성적순으로 채용되게 되는데,
지역 대학병원에서 먼저 일을 하고 있다가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TO가 났다며 오라고 하면 그렇게 지역대학병원을 그만두고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대학병원들이 서울의 대형병원과 비교해 신규 간호사들이 많은 것이다.
결론, 응급실 채혈을 잘 못하는 이유는 신규 간호가 많다는 것. 어쩔 수 없다는 것. 한두 번 실패하면 정중하게 선배 간호사가 해줄 것을 부탁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