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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 김동우 Mar 28. 2024

국화 한 다발이 바꾼 풍경

멕시코

애니깽의 역사를 찾아 나선 멕시코 일정은 멕시코시티가 그 시작이었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이 도시는 참 매력이 넘친다. 다운타운 중심 소칼로 Zocalo 광장 주변에는 다 열거하기도 힘든 박물관과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러브스토리를 좇아 그들이 남긴 작품을 감상하는 건 이 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시선을 조금만 외곽으로 돌리면 신들의 도시로 불리는 테오티우아칸 Teotihuacan과 바티칸 다음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방문한다는 과달루페 성당 Basilica de Guadalupe 등이 여행자를 기다린다.

간혹 여행을 하다 보면 무덤이 유명 여행지가 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레콜레타 묘역 Cementerio  de la Recoleta에 잠든 에비타 Eva Peron의 묘지가 그랬고, 인도의 타지마할이 그랬다. 또 오스트리아 빈 예술가들의 무덤은 브람스, 요한 슈 트라우스, 슈베르트, 베토벤 등을 찾는 관광객으로 연중 붐빈다. 멕시코에도 이런 장소가 있다. 어디까지나 한국인에게만 해당되는 장소이긴 하지만 멕시코시티 외곽 판테온 돌로레스 Panteon Civil Dolores에 잠들어 있는 독립운동가 김익주(1873~1955)의 묘지가 그 곳이다.


3a–6–B–37구역, 입구에서 중앙길로 들어가면 B–37번 길로 들어와 후안 알바레스 Juan Alvarez 길에서 오른쪽으로 60미터 지점


김익주의 무덤 위치를 설명해놓은 자료는 독립기념관 정보가 유일했다. 공동묘지 정문 앞 로터리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나 있는 길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아무리 찾아도 후안 알바레스 길이 보이지 않았다. 무작정 찾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한참을 헤매다 묘지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정반대편을 가리켰다. 다시 공동묘지 정문으로 내려가 관리인이 가르쳐준 방향으로 길을 잡아 나갔다. 여기서부터 ‘오른쪽으로 60미터’란 단서를 착실히 따라가면 될 일이었다.

길을 따라 좌우 무덤 하나하나를 사진과 대조했다. 정보대로 60미터 정도를 샅샅이 뒤진 듯했다.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자료 사진과 비슷해 보이는 무덤이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 오차가 있을 수 도 있었다. 다시 길을 따라 올라가며 조금 더 수색 아닌 수색 작업을 벌였다. 그때였다. 비석 가운데 ‘KIM LEE’란 단어가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김익주의 무덤이 분명했다. 자세히 보니 자료 사진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가방을 내려두고 두 손을 모아 절을 올렸다.


독립운동가 김익주 묘소, 멕시코시티 © Kim Dong Woo


화려한 주변 무덤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꽤나 소박한 묘지. 화병에는 오래전 누군가 꽂아둔 생기 잃은 국화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하얀색이었는지 노란색이었는지조차 알 길 없는 꽃잎은 손대기 무섭게 우수수 마른 잎을 떨구었다. 애석한 풍경이었다. 그냥 이 모습을 두고 볼 수가 없어 길을 돌려 꽃 한 다발을 사들고 왔다. 삼각대를 펼치고 영전 앞에 꽃 한 송이를 꽂고 셔터를 눌렀다. 한 송 이, 한 송이 꽃송이가 늘어날 때마다 셔터를 눌렀다. 누구의 묘지를 이렇듯 많이 찍어본 날이 있기나 했던가.

국화가 화병에 다 꽂히자 적막 속에 빛이 들고 안온함이 퍼져나 갔다. 한 송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게 쌓이면 풍경을 바꿀 수 있다. 명明이 생인 까닭이고, 생이 명인 이유다. 관심은 살풍경을 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꽃이 시들기 전 누군가 이 묘지를 방문한다면 분명 그들도 나와 같은 자족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발걸음이 이어진다는 건 기억되고 있다는 의미이자 기억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니 말이다. 분위기가 바뀐 묘지를 둘러보며 다음 사람이 말라비틀어진 갈색 꽃을 보고 적요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길 소망했다.

문득 멕시코시티에 살고 있다는 김익주의 손자 다빗 킴이 떠올랐다. 그를 만나면 멕시코에서의 독립운동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이야 길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사람을 찾으려고 보니 앞이 캄캄했다. 한국에서처럼 전화 몇 통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엔 국외독립운동사 적지만 기록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계속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사람이 빠진 다큐멘터리, 풍경만으로 <인간극장>을 만드는 느낌 같았다. 안 될거란 섣부른 예단은 작업을 망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인지부터 확인해보는 게 순서였다. 그래야 후회도 없다.


먼저 멕시코시티 한인회를 찾아갔다. 어렵사리 한인회 회장을 만났다. 그는 대사관에 연락해보란 말뿐이었다. 구멍가게에서 동전을 바꿔 공중전화기 앞에 섰다. 대사관에 전화를 했다. 다빗 킴의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했다. 대사관에선 찾는 사람에게 의사를 묻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김동우 작가는>

2017년 인도여행 중 우연히 델리 레드 포트가 한국광복군 훈련지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10개국에서 작업을 이어 왔다. 크게 관심받지 못했던 작업이 전시 출판 등으로 조금씩 알려지자, 유퀴즈온더블럭 광복절 특집편 출연 등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전국 각지에서〈뭉우리돌을 찾아서〉전시를 열어왔으며 지은 책으로는《뭉우리돌의 바다》,《뭉우리돌의 들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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