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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 김동우 Mar 25. 2024

목숨을 건 태평양 횡단

멕시코

멕시코 이민은 존 마이어스 John G. Myers에 의해 불법으로 진행된 일이었다. 이민 브로커였던 그는 멕시코 유카탄 지역 애니깽 농장주협회 대리인 자격으로 중국과 일본에서 노동 이민자를 모집하려 했다. 하지만 멕시코 이민에 대한 평이 매우 나빠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일본 대륙식민회사와 결탁해 대한제국으로 눈을 돌린다. 1904년 8월 대한제국에 들어온 마이어스는 서울, 인천, 부산, 목포, 개성, 평양, 마산 등 전국 11개 지역에 대리점을 설치하고 이민자를 모집한다. 그러면서 1904년 11월부터 1905년 2월까지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 등에 10회가 넘게 허위 광고를 게재한다.

북미 묵서가국(멕시코)은 합중국과 이웃한 문명 부강국이니 수토가 아주 좋고 기후도 따뜻하며 온역 등 나쁜 병질이 없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바다. 그 나라에는 부자가 많고 가난한 사람이 적어 노동자를 구하기가 극히 어려우므로 근년에 일·청 양국인이 단신 혹은 가족과 함께 건너가 이득을 본자가 많으니 한국인도 단신이나 혹 가족을 데리고 그곳에 가면 반드시 큰 이득을 볼 것이며 한국과 묵서가국은 통상조약을 체결하지 않았으나 최혜국으로 대우하여 마음대로 왕래하는 데 조금도 지장이 없을 것이다. <황성신문>에 실린 멕시코 이민 광고 일부

이 무렵 사회 분위기는 러・일 전쟁 등으로 뒤숭숭하기만 했다. 설상가상 당시 경제 상황 또한 몹시 좋지 못했다. 백성들은 기근에 시달리며 굶주렸고 나라마저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여기에 하와이 이민에 대한 긍정적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당시 분위기는 멕시코 이민에 대해 혹세무민하기 쉬웠다. 1,000여 명의 모집 인원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제물포에서 이민 배에 오른 1,033명의 사람들은 남자가 700여 명, 여자가 130여 명, 아이들이 200여 명 정도였다. 대부분 가족 단위 이민자였다. 독신은 200명 정도였다. 거주지별로는 도시 거주자가 950여 명이었는데 이 중 서울과 인천 출신이 670여 명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농사 경험이 없었다. 신분은 양반, 무당, 내시, 건달, 걸인 등 다양했다. 또 200여 명의 퇴역군인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나중에 독립운동의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이밖에도 부랑아로 떠돌던 10여 명의 15세 미만 아이들이 포함돼 있었다. 멕시코 이민은 불법 아동 노동 착취의 사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이민을 불법이라 딱 잘라 말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멕시코행 배에 오른 사람들은 엄연히 대한제국 외부 소속 인천 감리가 발행한 집조(일종의 여행권)를 소지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는 마이어스가 외국 공사에 청탁을 하는 등 관리를 매수했단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관심과 외면 속에 1905년 4월 초 1,033명이 제물포에서 영국 상선 ‘샌 일포드 S.S. Ilford ’호에 오른다. 화물 공간을 개조해 만든 비좁은 선실에서 지독한 뱃멀미가 시작됐다. 난생처음 접해보는 고통이었다. 거친 항해에 쪽잠조차 편히 잘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음식은 형편없었고 위생 환경 또한 좋지 못했다. 생지옥이 따로 없는 풍경이었을 거다. 결국 모진 항해를 견디지 못해 몇몇이 죽음에 이른다. 이들은 검푸른 바다에 수장됐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가엾고 스산한 곡소리가 바람에 흩날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저미게 했을 거다. 힘겨운 항해를 견딘 사람 중엔 태중의 아이도 있었다. 엄마 배 속에 있다 운 좋게 세상 빛을 본 아이는 모두를 기쁘게 했다.이렇듯 사死는 타인을 울려 슬픔을 퍼트렸고 생生은 자신을 울려 기쁨을 나누게 했다. 삶과 죽음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을 쓰면서 다른 얼굴을 하고 항해를 계속했다.


살리나크루스 해변, 멕시코 © Kim Dong Woo


한인들은 제물포를 떠난 지 40여 일만에 멕시코 살리나크루스 해변에 도착한다. 지긋지긋한 선실 생활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지만 멕시코는 쉽게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당시 통역이었던 권병숙에 따르면 한인들은 멕시코 당국이 즉시 하선을 허락하지 않아 4일간 더 배 안에 머물다 음력 4월 10일(양력 5월 13일, 멕시코 현지 5월 12일) 해변에 첫발을 내디딘다. 멕시코 한인 디아스포라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 통역 권병숙이란 자의 행동이 두고두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권병숙은 을사늑약 오적 가운데 하나였던 권중현(농상공 부대신)의 사촌이었는데 서울 미국공사관 통역으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그의 평판은 그리 좋지 못했다. 사기와 절도 등으로 해고를 당 한 적도 있었다. 그는 이민 브로커와 함께 사기나 마찬가지였던 멕시코 이민을 최일선에서 추진해나간다. 자신의 사사스런 과거 때문인지 제물포를 떠나기 전 권유섭에서 권병숙으로 개명까지 한다. 멕시코에선 애니깽 농장주 편에 서, 한인들의 참담한 생활이 고향 땅에 알려지지 않도록 편지를 검열하거나 금지하는 악행을 일삼는다. 이런 자신의 죄 때문인지 그는 2년 뒤 멕시코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 두문불출하다 황망하게 배에 올라 고향으로 돌아간다. 권병숙은 이 이민의 실체를 알고 있었던 사람일까. 그는 왜 동포들을 사지 아닌 사지로 내모는 데 앞장섰을까.


<김동우 작가는>

2017년 인도여행 중 우연히 델리 레드 포트가 한국광복군 훈련지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10개국에서 작업을 이어 왔다. 크게 관심받지 못했던 작업이 전시 출판 등으로 조금씩 알려지자, 유퀴즈온더블럭 광복절 특집편 출연 등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전국 각지에서〈뭉우리돌을 찾아서〉전시를 열어왔으며 지은 책으로는《뭉우리돌의 바다》,《뭉우리돌의 들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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