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왠지 모를 불쾌한 기시감
첫째아이가 여섯 살쯤이었던 것 같다.
아침마다 종종 마주치는 이웃주민을 그날도 어김없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쳤다. 평소엔 별 생각없다가 이날따라 유독 첫째에게 인사를 시켜야겠단 생각에 "다은아, 인사해야지"라고 말한 순간, 이상한 거부감이 들었다.
등원을 시키고 혼자 소파에 앉아 생각했다.
'아까 왜 말하면서 말하기가 싫어졌지?'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나도 인사를 제대로 한 적 없으면서 딸에게는 하라고 강요해서 기분이 이상했던거다. 단지 이웃에게 인사하는 것은 예의 바른 것이라는 이유로.
EP. 2 원인을 알기까지 걸린 시간
그 후로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남편과 저녁에 맥주한잔하다 우연히 그날 내가 느꼈던 기분에 대해 얘기를 꺼내게 되었다. 그리고 얘기를 타고 올라올라가 보고나서야 내가 인사를 하기 싫은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내가 동네어른들께 인사하면 엄마는 날 살짝 밀치며 하지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엄마또한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는 커녕 상대방이 "안녕하세요"하며 꾸벅 인사하면 엄마는 "아, 네." 대충 말하고 빠른걸음으로 지나갔다. 그런데 아빤 또 달라서 평소에 인사 잘하고 다니라 했다.
그래서 엄마랑 있을땐 인사를 안했고 아빠랑 있을땐 인사를 했다. 이러다 두분이 같이 계실땐 엄마 눈치를 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꾸벅 인사했다. 그러면 엄만 가끔 "뭐하러 인사하노, 쯧"하며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인사를 잘하면 칭찬받을 행동이라고 학교에서도 다른 어른들도 그러셨는데 엄마의 저 반응은 마치 내가 나쁜 행동을 해서 혼나야하는 일로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가 늘 인사를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었는데, 친하게 지내고 있는 내 또래 친구들 엄마들이나 다른사람들이 봐도 존경할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겐 먼저 환하게 웃으며 살갑게 다가갔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어릴 때의 난 한가지 사실을 자연스레 배울 수 있었다.
'나한테 좋은 걸 주는 사람들한테만 인사를 잘하자.'
이 삐뚤어진 가치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사할때마다 사람들에게 퉁명스럽게 인사하던 옛날 엄마의 얼굴이 항상 떠올랐다. 불쾌한 기시감이 여기에서 온 것이다.
내 어린시절의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된 지금도 그 당시 엄마와 똑같은 표정과 말투로 동네사람들을 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게 잘못됐다는걸 깨닫기까지 3년이 걸렸다.
최근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인사할때마다 느끼는 진짜 내 속마음에 대해 얘기를 나눈 게 있다.
나: 인사할 때 웃어야하잖아요.
상담사: 아니요, 꼭 안 웃어도 돼요.
나: 제가 살면서 무표정으로 있을 땐 차갑단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인사할때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게 웃어야할 것 같은데, 억지로 웃으면 또 그게 어색한 표시가 나요.
상담사: 차갑게 보이긴 해요. 근데 차가운인상인데 인사 안하고 가는거와 차가운인상인데 인사하고 지나는건 다르죠. 전자는 '인사도 안하네'라며 지나갈 수 있지만 후자는 '인상은 차갑지만 그래도 인사는 하네'하고 생각할 수 있죠. 표정은 인사할때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아요. 어느 버스기사분은 손님들이 뒷문으로 내릴때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해요. 그러면 손님분들도 인사하고 내리세요. 기사분은 앞을 보고 인사를 한거기 때문에 손님은 기사분 뒤통수를 보며 인사하거나 내리면서 앞만보며 인사하는데, 이런 것도 괜찮은거예요. 꼭 웃거나 얼굴을 마주보며 하지 않아도 돼요.
성인이 한참되고나서도 혼자 돌아다닐 땐 내 멋대로 인사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고. 상대방이 반갑게 인사해도 내 기분이 나쁜 상태면 대충 꾸벅하거나 못본척하며 지나가고. 아마 싸가지없이 보였을꺼다.
살면서 엄마한테서 배운 나쁜 인사법과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이루어 낸 결과다.
EP. 3 깨고 나가는 중
아직도 인사말이 입에서 잘 안 나올때가 있다.
한번 더 진하게 느끼지만 습관은 참 무섭다.
'내쪽을 안 보고 있는데 그냥 지나가, 말아?'
'머리만 숙일까, 말도 할까?'
'엄마랑 아이 둘다한테 인사해야 하나?'
'아.. 인사하기 싫은데 피해갈까?'
'내가 인사할때마다 늘 안 받아주는데 꼭 해야하나?'
인사한번하는데 뭔 생각이 이렇게나 많이 드는지 나도 피곤하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을 한 두개 세워봤다.
1. 눈 마주치면 일단 고개 꾸벅해보기
2. 먼저 인사하고 싶으면 주저말고 반갑게 인사하기
3. '웃어야 한다는 얼굴'에 꽂혀서 어색하게 인사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