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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니 Oct 10. 2022

늦은 오후에만 오는 손님

오후 세 시가 지나면 B급 취향 앞은 교복 입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B급 취향 바로 옆 중학교 학생들의 하교 시간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참 바빠 보인다. 그 모습은 흡사 직장인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어디론가 급히 뛰어가거나 연신 누구와 통화를 하는 모습이 그렇다. 30분가량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리는 조용해진다.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을 처음 봤을 땐 ‘저 학생들이 다 여기로 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를 팔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B급 취향을 여는 12시가 조금 지나면 학생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학교 담장을 넘어 들어온다. 낙엽 구르는 것만 봐도 웃을 때라지만, 뭐가 그리 숨넘어갈 만큼 재미있는지 궁금해서 괜히 근처를 기웃댄 적도 있다.     


간혹 학생 손님들이 올 때가 있긴 하다. 학생 손님들은 주로 시험 기간에 자기 덩치만 한 가방에 교재를 잔뜩 넣어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공부를 한다. 공부하러 왔다고 하면서도 함께 온 친구와 짧지 않은 시간 담소를 나누고, 엎드려 잠을 자기도 한다. 그러다 너무 오래 잠을 자면 행여나 시험을 망칠까 걱정돼 슬쩍 초콜릿을 내밀며 학생 손님들을 깨운다. 그러면 그들은 배시시 웃는 얼굴로 초콜릿을 받아 들고 다시 공부를 한다.

     

B급 취향 건물 3층에는 학원이 있다. 몇 개월 전 기존의 학원이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곧바로 다른 학원이 입점했다. 근처에도 영어학원, 논술학원을 비롯해 다양한 학원이 있어서 손님으로 만나지 않더라도 나는 늘 학생들을 본다.

학원 차는 학생들을 태우고서 늦은 밤까지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차에 오르는 학생도 차에서 내리는 학생도 언제나 모두 지친 기색이다. 직장인이라면 매일 새벽에 출근해 야근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지칠 만도 하다. 아무리 내 생계가 B급 취향에 달렸다고 해도 아마 학생들만큼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내게도 학생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밤늦게까지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입시 학원에 갔다. 초등학교 때 경북 과학 영재로 선발되며 높은 아이큐를 검증받은 내가,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매번 하향 곡선을 그리는 성적표를 가져오자 엄마는 불안했을 것이다.

학원에서는 내 수준을 파악해야 한다며 테스트를 했다. 사춘기 반항심에 한 번호로만 답을 쓴 나는 D반에 배정됐다. 테스트 결과에 따라 성적순으로 S반, A반 등에 배정되는데 D반은 꼴찌 반이었다.

D반에 들어오는 선생님들은 늘 “성적 올려서 윗반으로 올라가야지”라는 말을 했다. 학원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테스트한 결과로 다시 반을 배정했다. 선생님은 모두의 앞에서 윗반으로 옮겨가는 아이들을 칭찬했고, 남은 아이들에게 더 분발하라고 했다. 나는 D반 아이들이 좋아서 계속 D반에 있고 싶었지만, 선생님의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낙오자가 된 것 같았다. 선생님들은 수업에서 은연중에 S반이나 A반을 우리와 비교했고 자주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D반에 남는 것은 학업 부진아라는 걸 인증하는 것 같았다.

하교 후 4시부터 시작된 학원 수업은 10시에 끝이 났고, 12시까지는 지하층의 자습실에서 곰팡이 냄새를 맡으며 칸막이가 있는 책상에 앉아 공부했다. 불시에 나타난 선생님은 영어 듣기나 국어 듣기가 아니면 mp3를 빼앗고, 손바닥을 때리거나 머리를 쥐어박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포항의 고교 평준화가 시행되기 전이라 성적순으로 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입학한 곳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공립 고등학교였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선생님들이 진급하기 위해 거쳐 가는 유배지가 아니냐는 소문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배처럼 우리 학교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있었다. 게다가 선생님 대다수가 굵고 단단한 빗자루 대를 들고 다녔는데, 그것을 학대에 가까운 체벌을 하는 데 사용했다.

임의로 자습을 빠진 아이들은 교복 치마를 입고 엎드린 채 속바지가 다 보일 정도로 엉덩이나 허벅지를 맞기 일쑤였고, 가끔 무릎 꿇은 채 허벅지를 밟혔다. 자습 시간에 대화하다 들키면 선생님께 맞으면서 밤 10시나 12시까지 학교에 꼼짝없이 붙어있어야 했다.

눈이 절로 감기는 늦은 밤이 돼서야 학교를 벗어났다. 집까지 가는 길엔 친구들에게 들은 ‘갈대숲에 숨어있다가 나오는 강간범’ 이야기가 떠올라 부지런히 두리번대며 걸었다.     


청소년기를 되돌아보면 나에게 저녁 있는 삶은 없었다.  어둡거나 꿉꿉하고, 물리적 강제력이 동원된 공간에서 밤을 보냈다. 선생님은 내가 교과서가 아닌 책을 읽을  ‘쓸데없는  한다며 나무랐고, 음악을 들을  매를 들었다.     


어른들은 수험생이 된 내게 원하는 꿈이나 직업군에 맞는 학과와 학교를 선택해 진학하라고 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나는 부랴부랴 적당한 학과를 물색했다. 그것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주위 어른들의 조언에 따라 취업이 잘 되기만 하면 상관없었다.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말을 잠언처럼 받아들이던 때가 지나니, 온 사회가 ‘행복은 네 안에 있다’라는 말을 했다. 동시에 자기 계발로 잠재된 무언가를 찾으라고 요구했다. 누구도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으나, 김난도 교수나 혜민 스님의 책이 불티나게 팔릴 때 나 역시 유명인들의 자기 계발 지론에 휩쓸려 도태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매일 어디론가 바삐 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16년의 교육과정을 마친 결과는 무엇인가 생각한다. 그리고 학생의 목표를 대학 입학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이 사회가 바람직한지 고민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왜’ 학원에 가고, ‘왜’ 공부하는지 알고 있을까? 누구나 다 하니까, 부모님이 시키니까 하는 걸까?

학생들은 자신의 꿈과 희망을 고민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책상 위 교과서에 얼굴을 묻는다. 나중에는 결국 무용해질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말을 진리처럼 믿으면서.     


어느 늦은 밤 중년 여성과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이 들어왔다. 엄마로 보이는 여성은 쿠키 두 개를 골라와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했다. 당연히 어른이 먹을 줄 알았던 커피는 학생의 손에 쥐어졌다. 학생은 학원 수업을 들으러 가는 듯했다. “열심히 공부해”라고 말하며 웃는 중년 여성과 달리 학생은 침울한 표정으로 쿠키를 손에 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들이 나간 뒤 나는 왠지 울상이 되고 말았다.

밤 10시에 가까운 시간, 이제 막 초등학생 티를 벗은 아이를 학원으로 떠미는 엄마. 그건 한국 교육 실태를 직접 목격한 것과 다름없었다. 수십 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혼자서만 시간이 멈춘 듯한 한국 교육을.

그 학생은 배운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거나 자신의 취향과 특기를 탐색하기보다 그저 문제를 풀고 내용을 암기할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하루가 쉴 틈 없이 바쁜 학생들은 B급 취향에 올 시간이 없다. 학원에 다니지 않거나, 학원 수업 중 쉬는 시간에 잠깐 배를 채우러 오는 학생들은 늦은 오후에야 B급 취향에 온다.     


나는 이른 오후의 학생 손님들을 만나고 싶지만, 한국 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학생 손님들은 언제까지고 늦은 오후에만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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