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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니 Oct 13. 2022

쿠키를 굽는 마음

늦은 오후가 되도록 손님이 한 명도 다녀가지 않을 때면 나는 조용히 진열된 쿠키 몇 개를 뺀다. 혹시라도 손님이 오면, 전에 손님이 와서 사 갔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게끔 할 요량으로 말이다. 그럴 때마다 굴욕감을 느끼지만,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을 손님이 눈치챌 때의 수치감에 비해 참을만하다.

쿠키를 뺄 때는 통유리 너머로 누군가 보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야 한다. 괜히 서로 민망한 상황이 될 테니까. 그 후 다시 손님을 기다리며 책을 읽으려 해도 좀체 집중이 안 된다. 밤이면 버려질 쿠키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쿠키는 여러 날을 두어도 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손님에게 만든 지 며칠 된 쿠키를 팔 수도 없으니 말이다.     

손님들은 10가지가 넘는 종류의 디저트를 모두 내가 만든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맛이 있어서 두 번 놀랐다. 매일 이렇게 굽느냐는 질문에 늘 나는 그렇다고 답했고, 손님들은 내게 고생이 많겠다고 말했다.     


개업 초에는 매일 오픈 시간보다 4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 디저트를 만들었다. 이제는 일머리가 생겨서 전날 미리 반죽을 해 놓는다. 덕분에 다음날 늦게 출근해도 그대로 구워내기만 하면 금방 쿠키를 완성할 수 있다. 손님이 줄어서 여유가 생긴 것이 서글픈 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베이킹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하면 다들 놀랐다. 과일 깎아 먹는 것도 귀찮아 안 먹고 마는 내가 빠르게 디저트를 만드는 걸 보면 엄마는 아직도 놀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베이킹을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디저트를 만들어 팔겠다고 나섰던 과거의 내가 참 용감했던 것 같다. 아니면 무식했거나. 아마 후자가 정답일 확률이 높다.

처음엔 디저트 생지를 구입해서 구워 팔 생각을 했다. 그러기엔 비용이 만만찮았고, 정성도 없어 보여 직접 만들어 팔기로 마음먹었다.

베이킹은 물론 재료 보관이나 사용하는 도구의 이름도 몰랐던 나는 일단 관련된 물품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그 후 B급 취향 개업일을 정해두고, 한 달 동안 매일 출근해 이것저것을 만들었다. 나는 원래 요리에 서툴렀던 터라 매일 베이고, 데어 손이 성할 날이 없었다. 결과물은 당연히 계속 실패했다. 책에서 시키는 대로 만들었는데 자꾸 실패해 쌓여가는 음식물을 보며 걱정이 몰려왔다. 비용은 둘째치고 이러다 오픈도 못 하고 디저트 연습만 할 것 같았다.

빵을 만들던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고, 영상과 글을 보고 공부하면서 다시 디저트를 구웠다. 며칠을 분투한 끝에 드디어 첫 성공작 에그타르트를 만들었다. 그때 만든 에그타르트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고진감래라는 말의 의미를 생생하게 경험한 일이었다. 그리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여겼을 때는 베이킹 연습을 시작한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고, 계획했던 오픈 일에 문을 열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다녀가던 개업 초창기에는 매일 많은 양의 쿠키를 구웠다. B급 취향이 디저트 카페 겸 서점이지만, 여기가 카페인지 서점인지 모를 만큼 손목이 아릴 정도로 반죽을 했다. 그리고 한 달여간의 1,500원 아메리카노 오픈 기념행사가 끝난 후, 그렇게나 드나들던 사람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종적을 감췄다.

간혹 디저트 맛집으로 소문난 것을 듣고 찾아왔다는 손님도 있었지만, 그 소문은 멀리 퍼지지 못한 게 분명했다. 먹는 손님마다 맛있다고 칭찬하던 디저트는 매일같이 남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처음에야 아까운 마음에 나와 가족이 먹기도 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밥을 먹어야 사는 한국인에게 매일 남아도는 디저트는 계륵과도 같았다.

멀리서 온 손님들은 ‘책과 맛있는 디저트까지 있는 이런 곳이 우리 동네에 있으면 매일 올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정말 고마운 말이지만, 동시에 허탈한 말이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이토록 이곳을 애정 하는데, 가까운 곳의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 들르거나 B급 취향의 존재도 모르니 괜한 심술이 나기도 했다.     


어쨌거나 내가 있는 곳의 사람들이 자주 오도록 하려면 방법이 필요했다. B급 취향은 배달도 하지 않으니 손님의 방문만이 디저트를 판매할 유일할 방법이었다.

신메뉴를 만들어 팔면 손님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어 다양한 신메뉴를 만들었다. 그러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애초에 카페 목적으로 오는 손님이 적었고, 방문하는 손님은 주로 책을 찾았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손님도 안 오는데 신메뉴만 자꾸 만들면 뭐하노?”

맞는 말인데도 언니의 말은 나를 아프게 쿡 찔렀다. 팔리지 않는다고 푸념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뭐라도 해보려는 불안한 내 마음을 언니가 온전히 알 리 없으니 나는 그저 새로 개발한 디저트를 굽는 데 열중했다.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았던 어느  , 디저트를 모두 버려야 한다는 사실 울적한 마음으로 내일 판매할 쿠키 반죽을 하고 있었다.  여성이 들어와 조금 둘러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정말 둘러보고만 가는 사람이 많아서, 그러시라 대답하고 다시 반죽을 했다. 잠시  그는 쿠키  개를 담아 계산대에 섰다. 그는 ‘책방을 운영하는  쉽지 않을 텐데, 좋은 공간을 만들어주어 고맙다라고 말했다. 디저트를   개도 팔지 못한 날이어서 쿠키를 담아오는 모습에서부터 약간 울컥했는데,  처지와 마음을 이해하는 듯한 그의 말에 그대로 엉엉 울어버렸다. 난생 처음으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안겨 오열했다. 그 손님 역시 모르는 사람이 꺽꺽 울어대는  처음 봤을 테지만. 당황스러웠을 텐데도 그는 온화한 표정으로 우는 나를 한참 동안 토닥이며 위로했다.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이제 안 오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그는 이후에도 종종 찾아와 책을 사고 출장 가기 전에는 꼭 들러 쿠키와 커피를 사 간다.     


어느 손님은 책 보다 마진이 남는 음료와 디저트를 구매하는 게 도움 될 것 같다며 자주 들러 음료와 디저트를 사 가고, 먼 동네에 사는 어느 손님은 차를 타고 와서 쿠키를 사가기도 한다. 포항에는 B급 취향보다 맛있는 쿠키를 파는 곳이 많고, B급 취향이 있는 동네에는 작은 쿠키 가게가 많다. 그런데도 손님들은 그런 맛집들을 지나 굳이 외진 곳에 있는 B급 취향에 와서 쿠키를 산다. 내가 받은 이 마음들을 어떻게 해야 다 갚을 수 있을지, 감사함에 절로 숙연해진다. 그런 손님들께 디저트를 더 넣어드리는 걸로 무심히 내 마음을 표한다.     


디저트마다 생각나는 손님들이 있다. 마들렌을 만들 때, 고구마 크럼블을 만들 때, 레몬바를 만들 때 그걸 맛있게 먹던 손님들 얼굴을 머리로 그려보며 디저트를 만든다. 그러면 괜히 더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기면서 재료를 아낌없이 넣게 된다.

몇 달 전 대폭 상승한 재룟값 때문에 많은 음식점에서 메뉴 가격을 올렸다. 애초에도 저렴한 편이었던 B급 취향 디저트는 그런 상황에도 기존 가격을 고수했다. 가격을 올리지 않은 건 손님이 더 줄어들까 봐 염려되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맛집을 마다하고 멀리서 일부러 이곳까지 와주는 손님들에 향한 내 애정의 표현이다.     


오늘도 나는 손님이 오지 않아 팔린 척 쿠키를 몇 개 뺐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따뜻한 커피와 점심 겸 저녁으로 먹었다. 아마 디저트는 또 남겠지만 내일이면 새롭게 충전된 희망과 기대감으로 손님들 얼굴을 생각하며 다시 쿠키를 구우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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